최근 통계청은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을 0.98명으로 확정 발표했다. OECD 36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은 한국이 유일하다. 나아가 세계에서도 0명대 출산율은 우리나라뿐이다. 충격을 넘어 가히 재앙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녀수다. 2.1명이어야 현재 인구가 유지된다. 인구가 중요한 이유는 인구 감소는 생산과 소비 저하로, 이는 고용과 재정 축소 등 국력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출산장려 정책의 약발이 없다는 거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12년간 무려 152조 원을 저출산대책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기간 중 합계출산율은 1.13명에서 0.98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산대책이 출산장려금, 양육수당, 아동수당 같은 인기영합성 현금살포 위주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약 535만 명이 태어났으니 산술적으로 1인당 약 2천8백만 원이 투입된 셈이다. 이 예산을 차라리 양육비 명목으로 개인에게 지급했으면 출산율 증가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기존 저출산대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저출산은 선진국의 일반적인 추세다. 인위적으로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 여건이 개선돼 아이들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면 출산율은 일정 수준까지 올라가게 돼있다. 방만한 저출산대책 예산의 일부를 노인복지정책에 사용하자. 우리나라는 2017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6년에는 20%로 초고령사회가 되고, 2045년에는 37%가 돼 세계에서 노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될 거라고 한다.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돌봄을 필요로 하는 수요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핵가족으로 인해 전통적인 가족돌봄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대체할 전문적인 노인돌봄 체계가 요구되고 이를 위한 재정 투입은 불가피하다.

노인복지정책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건강한 노인이 많아 돌봄에 소요되는 재정수요를 최소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려면 적당한 수준의 일을 해 정신적 육체적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휴식이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쉼표를 찍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휴식이 일상이 되면 그것 역시 노동이나 다름없어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데 그날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것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 정신과의사 이시형 박사가 근작 「어른답게 삽시다」에서 한 말이다.

삼성생명 「2018 은퇴백서」에 따르면 우리 직장인의 평균 은퇴연령은 57세다. 100세 시대를 맞아 90세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은퇴 후에도 30년 이상 긴 세월이 남아있다. 아무 일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너무 길다. 젊었을 때만큼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일이야 못하겠지만 각자 건강 수준에 맞는 적당한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노인복지다. 일을 통한 적정소득, 봉사와 같은 사회공헌활동, 취미 등 자아실현, 바람직한 노후생활을 위한 3요소다.

나이 들어도 일하고 싶은 노인을 위한 일자리대책을 마련하자. 마침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46% 증액하여 노인일자리를 74만 개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농촌 비닐 걷기, 풀 뽑기 같은 ‘허접한’ 일자리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양질의 일자리는 정부보다는 기업이 나서야 한다. 정부는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본인이 원하면 적어도 75세까지는 자신의 경륜을 살린 ‘괜찮은 일’을 해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력 저하를 노인의 노동력으로 보완토록 하자. 지금 노인세대는 어른들 모시느라, 아이들 기르느라 정작 본인 노후대책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개인 재산과 각종 연금으로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노인들이 일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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