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4명과 시작한 회사를 29년간 일궈 1조원대 회사로 키운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흙수저 신화’가 단 2분30초짜리 한 편의 동영상에 의해 무너졌다.

 

윤 회장이 사내 조회에서 틀어준 동영상에는 한일 갈등 관련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막말과 여성 비하 논란으로 불거져 결국 회장직을 사퇴하게 된 것이다.

 

윤 회장이 직원 700여명에게 보여준 동영상은 주로 일본의 무역보복에 따른 문재인 정부의 대응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아베가 문재인의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라는 등 ‘막말’이 포함돼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이라는 극단적인 여성 비하까지 더해진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샀다.

 

그러나 정부비난, 여성비하 어떤 것도 윤 회장 본인이 전달하려했던 ‘진심’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 한국콜마 측의 변이다.

 

한국콜마 고위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에 이은 한·일 경제전쟁. 글로벌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원에서 예시로 문제의 동영상을 틀었던 것이지 동영상의 내용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었다”며 “최근 반일 감정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현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력이 필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달을 가리키려던 손가락이 문제가 된 셈이다. 윤 회장은 지난 9일 입장문을 통해 “위기 대응을 위해 대외적 환경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특정 유튜브 영상의 일부분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사과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고객들이 돌아선 것은 더 큰 문제를 불러왔다.

 

한국콜마 불매 운동이 퍼지면서 주가는 52주 신저가를 경신할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관계사, 임직원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이는 윤 회장이 한국콜마의 경영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11일 서울 내곡동 신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를 입게 된 고객사, 저희 제품을 신뢰하고 사랑해 주셨던 소비자·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죄드린다”며 “특히 여성분들께 진심을 다해 사과의 말씀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저 개인의 부족함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모든 책임을 지고 이 시간 이후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윤 회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흙수저 신화, K뷰티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아왔다.

 

수학여행을 포기할 정도로 가난했고, 지방대 출신이라는 학력 콤플렉스도 평생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197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지만 해외파견의 기회가 명문대생에게 집중되는 현실에 실력을 키워 자신만의 회사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한다.

 

1974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제약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최연소 부사장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1990년 일본콜마와 51대 49의 지분으로 한국콜마를 창업했다.

 

사업 초반에는 자신이 몸담았던 제약 동종업계가 아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화장품사업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화장품 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도 도입해 큰 성과를 거뒀다.

 

추후 제약산업에도 진출해 한국콜마홀딩스 아래 화장품 ODM 및 제약 위탁생산(CMO) 업체 여러 곳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시켰다. 지난해에는 CJ헬스케어를 인수하면서 연결 기준 1조3579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윤 회장이 물러남에 따라 한국콜마홀딩스는 김병묵 대표이사가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이밖에 주요 계열사들 역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국콜마에 아들인 윤상현 총괄사장과 딸 윤여원 전무가 근무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오너쉽은 윤 총괄사장에게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윤 총괄사장은 한국콜마홀딩스와 한국콜마의 지분을 각각 18.67%, 0.08%를, 윤 전무는 0.06%, 0.13%씩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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