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 왔다. 종착역 오륙도 해맞이공원이 바로 눈앞이다. 2012년 5월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첫 발을 내디딘 지 8년 만에 동해안길 770km 걷기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그간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느낌표를 안겨주던 해파랑길 아니었던가. 출발할 땐 과연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지만 끝내 우리는 해냈다. 총 거리를 순수하게 걸은 41일로 나누니 하루 평균 19km를 걸었다. 

  큰 과제를 마치고 나니 맨 감사할 일 뿐이다. 무엇보다 별 탈 없이 안전하게 마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700여 km를 걷는 동안 어찌 아찔했던 순간이 없었겠는가. 보도가 따로 없어 대형트럭과 스치듯 걷기도 했다. 길을 잃어 숲이 우거진 산길을 헤매기도 했다. 기간 중 걷기 좋은 날씨를 주신 신께도 감사드린다. 비가 와 걷지 못한 날은 사흘 정도로 전 일정 중 5%에 불과했다. 그런 날에는 주변 유적지를 돌아보거나 관광을 하면서 나름 의미 있게 보냈다. 

  긴 도보여행으로 얻은 건 우정, 건강과 자연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수많은 날을 함께 살면서 우정을 도탑게 쌓았다.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족한 점은 서로 감쌌고 잘 한 점은 함께 나눴다. 자연에서 걸으니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자연은 위대했고 아름다웠다. 걷다가 만난 여러 사람들로부터 또 우리가 걸었던 산과 해변과 길에서 많은 걸 배웠다. 우리가 걸은 길은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책에서 문자로만 익히던 우리 문화와 역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공부했다. 해파랑길이 우리에게 남긴 큰 가르침이다.

  이처럼 멋진 해파랑길이지만 걷기 명소가 되기엔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길을 좀 더 철저하게 정비하고 관리해야겠다. 걷는 사람에게 표지기는 항해하는 사람에게 등대만큼 중요하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해 고성에서 끝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그 반대방향으로 걸어선지 표지기 찾기에 너무 애먹었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아이를 낳기만 할 뿐 건사하지 않고 있다. 국민 건강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는 만큼 좀 더 세심한 관심과 예산지원을  바란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띄엄띄엄은 해도 우리처럼 전 구간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해파랑길 걷는 동지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한국 사람이 넘쳐난다는데 그 절반만이라도 해파랑길을 걸으면 지역경제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함께’ 해냈다. 혼자서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자기 일정에 맞춰 갈 수 있을 때 가서 걷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마치면 된다. 하지만 함께 하는 건 만만치 않다.  생각과 사정이 서로 다른 인격체와 더불어 일정도 맞춰야 하고 역할도 분담하면서 목표를 달성해야한다. 한 팀(one team)이 아니고선 이룰 수 없다. ‘협력의 힘’을 이끌어 내야 한다. 주변 많은 사람이 우리를 부러워한다. 자기들도 하고는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을 마지막으로 걷던 2019년 6월 9일 새벽, 우리 국가대표청소년축구팀이 아프리카 강호 세네갈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쳐 4강에 올랐다. 그들도 ‘한 팀’을 외쳤다. 그들 덕분에 기분 좋게 최종구간을 걸을 수 있었다.

  여행이 인생의 목표는 될 수 없겠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편으로 그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영국 작가 헤즐릿(W. Hazlitt)은 “여행의 진수는 자유다”라고 했다. 또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는 것이다.”라고 했다. 모두 여행 예찬을 하는 글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죽어서는 어느 곳으로 가는고! 재산도 벼슬도 모두 놓아두고 오직 지은 업을 따라 갈 뿐이네.” 이번 부산 기장을 지나다 들린 해동용궁사 바위에 새겨진 법구경 말씀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걸 가르쳐주고 있다. 다 해파랑길 여행을 통해 얻은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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