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논란에서 피해기업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되면서 키코를 판매한 은행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이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분쟁조정안이 나올 경우 은행이 배상해야할 손실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다음 달 9일 또는 16일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키코 사건 재조사에 따른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윤석헌 금감원장이 ‘키코 재조사’를 천명한 지 1년 만이다. 재조사 대상 기업은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4곳이다. 키코 사건이 발생한 뒤로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거치지 않은 기업들이다. 전체 피해액은 1688억원에 달한다.

 

키코는 환율 하락으로 수출 기업이 손실을 입지 않게 하겠다며 출시된 파생금융상품이다. 기준 환율과 계약 금액을 미리 정한 뒤, 환율이 설정 범위 안에서 떨어지면 은행이 환율 손실액을 기업에 보상한다. 하지만 환율이 설정 범위보다 더 떨어지면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더욱이 환율이 크게 오를 경우 기업은 그만큼 은행에 보상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은행에 유리한 상품인 셈이다.

 

키코는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던 2000년대 중반에 많이 팔렸다. 그러나 2008년 예상치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900원대 초반이던 원·달러 환율은 1500원까지 폭등했다. 당시 732개 기업이 키코 때문에 3조3000억원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기업과 은행의 ‘키코 분쟁’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키코 사건에 대해 “은행이 환헤지(환율 고정) 부합 상품을 판매한 것은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은행 측 손을 들어줬다.

 

계약 불공정 여부는 계약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불완전 판매 부분에 대해서만 은행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액 일부를 배상하라고 했다.

 

이번에 금감원이 재조사 과정에서 중점을 둔 것도 불완전 판매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불공정한 상품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기 어렵지만, 은행이 기업에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대목을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그동안 수차례 “키코는 사기였다”고 소신을 밝혀왔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은행이 키코 판매 과정에서 상품 위험성을 어떻게 알렸는지를 판단함에 따라 피해기업 보상 비율은 피해액의 20~30%에 이르거나 더 오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은행이 배상해야할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은행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대법원에서 사기 판매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배상 논란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손해배상 소멸시효(손해 발생 시점에서 10년)가 지났으므로 금감원의 분쟁조정안과 별개로 배상 책임은 없다는 주장이다.

 

금융권에선 분쟁조정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내다본다. 분쟁조정안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수용 의무가 없어 은행들이 배상을 거부하면 또 다른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는 일단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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