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왕후가 기도했던 천년의 미륵불 보존은 누가?

포천의 보물

 

명성왕후가 기도했던 천년의 미륵불 보존은 누가?

포천 용화사

㈜주경 윤점호 대표

 

‘도 지정 문화재’가 되어야 보존되고 보호 받을 수 있는데, ‘향토 문화재’라는 이유로 소홀히 되고 있다. ㈜주경 윤점호 대표는 “미륵불을 하루 빨리 도 지정 문화재로 승급시켜 미륵불을 보존하고 미륵의 원력을 만방에 떨쳐 많은 중생들이 좋은 기운을 받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포천 군내면 구읍리 601-1번지에 위치한 용화사에는 고려시대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년의 미륵불이 숨 쉬고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거대해 보이는 4.4m의 높이에 하나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미륵불은 명성왕후의 기도처로 또 ‘금두은’이라는 전설로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며 포천시 향토유적 제 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이 미륵불은 안에서는 한 층이지만 밖에서 바라보면 2층으로 된 가옥 안에 보존되어 있다. 원래 넓은 논에 우뚝 서 있던 것인데, 용화사의 스님들이 이 미륵불이 서 있는 자리에 절을 지어 관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윤점호 대표가 보존, 관리하고 있다. 윤점호 대표는 4년 전 열반하신 선혜 주지스님과의 인연으로 미륵불을 모시게 되었는데,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미륵불의 꿈을 꾼 후, 적극적으로 미륵불을 세상에 알리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소중한 문화재 모두가 함께 보존하고 보호해야.

다가오는 가을에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불가에 귀의 할 예정이다. 윤점호 대표는 가구전문점 ㈜주경을 이끌어 오며 사업으로 번 수익금을 전액 용화사를 재건하고 보존하는데 시주했다. 윤점호 대표는 “천년의 세월을 이 자리에서 버텨온 미륵불이 방치되고 있다.”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모두가 함께 보존해야 한다.”고 재차 토로했다.

 

‘도 지정 문화재’로 승격할 만큼의 가치.

용화사 미륵불은 명성왕후가 나라의 명운을 걱정하며 3년 동안 기도를 올린 기도처로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이다. 당시에 많은 병사들이 왕후를 호위하며 이곳에 주둔했는데, 윤점호 대표는 “역사적 배경과 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라고 강조하며 미륵불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까닭을 설명했다.

 

“당시에는 이곳에 한 쌍의 미륵불이 서 있었다고 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구전에 따르면 사라진 미륵불은 사람 크기의 미륵불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도굴해 간 것인지 영험한 기운을 막아버리기 위해 없애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그만큼 이곳의 미륵불이 영험하다는 것이지요. 또 학계에서는 이 미륵불이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그 시기를 따져보니 궁예시절부터라는 거예요. 궁예가 자신을 미륵이라고 칭하며 나라를 통치하려고 했던 시기니, 그 당시에 이곳 포천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지요. 게다가 명성왕후가 기도처로 다녀간 곳이니 이곳의 영험함은 말할 것도 없어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좋은 기운을 가져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윤점호 대표는 “나라를 이끌어 가는 높은 양반들이 이곳을 방문해 미륵불의 원력으로 만백성이 편안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발원했다.

 

미륵불 설화, 선행을 닦아 복을 받은 평양 상인의 이야기 ‘금두은’

이 미륵불에는 <금두은>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93년 10월 대진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간행한 <제 2차 답사 자료집-군내면>과 1997년 포천 군지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포천군지>에도 실려 있는 이야기다.

 

『고려시대, 포천 땅에서 갑자기 미륵불이 솟았다. 그런데 아무도 미륵불을 돌보는 이가 없으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날씨가 더우면 더운 대로 지냈다. 어느 날 평양에서 서울로 장사를 하러 가던 상인이 이 미륵불에 기대어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미륵불이 너무 안쓰럽고 가여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단 천으로 미륵불을 정성껏 감싸주었다. 그날 밤, 잠이 든 상인은 꿈속에서 미륵불과 반월산 산신령이 나타나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미륵불은 자신을 돌봐준 평양 상인이 고마워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 하고 반월산 산신령에게 물어 보았는데, 산신령이 “좁쌀 두 되를 주자”고 하니 미륵불이 고개를 저으며 “금두은을 주자”고 했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상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서울로 내려가 장사를 했는데, 하루는 그 꿈을 생각하며 무심코 “금두은”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때 건너편 대감 집 대문에 서서 ‘무슨 비단이 좋을까’하고 구경을 하던 그 집 딸이 그 소리를 듣고는 대문에 철썩 달라붙고 만 것이다. 그 집 대감은 용한 점쟁이며 무당이며 힘 센 장사들을 수소문해 딸을 문에서 떼어 내려고 애썼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때 평양 상인이 다가와 ‘은두금’이라고 말하자 신기하게도 그 딸이 문에서 뚝 떨어졌다. 대감은 딸을 살려준 보답으로 상인을 집에 머물게 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고, 서북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벼슬길에 오른 상인은 그 대감 집 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신이담이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온 이 이야기는 당시 마을 사람들이 미륵불을 얼마나 신비하고 영험한 존재로 생각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오는 개천절, 무명용사들을 위한 위령제 지내며 포천의 ‘미륵불’ 만방에 알릴 것.

이러한 미륵불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나몰라라’ 방치되어 있으니 윤점호 대표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윤점호 대표는 다가오는 10월 3일 개천절에 포천에서 산화한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내며 미륵불의 가치를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계획 중이다. 포천시장, 국회의원, 시의원, 도의원, 소방서 그리고 시민들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미륵불의 가치를 알아보고 함께 보존해 주길 바랐다. 위령제는 용화사 신도 회장님과 미륵불개방 추진 위원회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윤점호 대표의 꿈에 나타난 미륵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한다. 세상 밖으로 나와 혼란하고 어지러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들을 구제해야겠다는 뜻을 펼치고자 함이다. ‘미륵’, 석가모니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까지 구제할 것이라는 미래의 부처, 후손들에게 물려 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모두가 함께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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