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보살

 

칼럼/ 무속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청결히하고

무서움을 알아야 진짜 ‘무속인’이 될 수 있다.

- 칠성보살 - 

 

 

 

무속에 관해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신라 제 2대 남해왕 때의 것으로 1세기 초가 된다. 외래종교가 처음 들어온 것이 4세기의 불교이니. 무속이야 말로 한민족의 전통 종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무속은 전통 종교로서의 존경과 신앙보다 미신과 경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단 바다 건너 일본은 한국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일본에서는 도시와 마을마다 신사(일본 고유의 민속 신앙,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신앙이다.)를 세워두고 참배를 하며 존경심을 가진다. 일본의 신사는 한국의 절과 비슷하다. 조용하고 정돈된 경내에 들어서면 심신이 안정되며 경건해진다. 한국에는 이런 분위기의 토속신앙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토속신앙이라고 하면 지방 곳곳에 무속인들이 차려놓은 작은 점집들이 전부다.

토속신앙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 주인이 있고 신이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산에는 산신이 있고 나무에는 나무의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신이 어디 있느냐’고 그 존재를 부정한다면 예수도, 부처도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신은 있고 어떤 신은 없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내가 있으면 네가 있고 네가 있으면 내가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닌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점술가, 즉 무속인 들이다. 이들은 신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앞을 내다보는 신통함을 가진다. 신통함을 가진 무속인들만 있다면 다행인데 게 중에는 신통력을 잃어 거짓말을 일삼는 무속인들도 있다. 무속인들은 말한다.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청결 하여 보살도를 행하면 단군신, 장군신이 함께 하지만 몸과 마음을 바로하지 않으면 신들이 노하여 무속인의 곁을 떠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이 떠나고 속빈 강정이 된 무속인들이 신이 있는 척 하며 거짓말로 세속인들을 혹세무민하게 되면 그 행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죄가 되어 업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지혜로운 무속인은 성직자들처럼 스스로를 정진하며 이타행과 보살도를 행해 신을 바로 모시고 바른 길을 가려고 하지만 이것을 모르면 오히려 무서운 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전통 무속인들은 ‘왜 무속인 양성과정이 없느냐’고 항변한다. 승려와 목사,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수계식을 받아야 정식으로 성직자가 된다. 성직자 뿐 아니라 장례사도 자격을 받기 위해서는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유독, 무속은 아무나, 누구나, 영과 접선만 되면 점집을 차리고 무속인이 될 수 있다. 때문에 가짜 무속인들이 판을 치게 되고 무속인의 이미지만 실추되고 있는 것이다.

무속(토속신앙)은 신앙이라기보다 세상만물에 존경을 표하는 하나의 겸손함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나를 둘러싼 자연에 또 다른 주인(신)들이 있음을 알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진다면 21세기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각박한 세상에 평화와 화합, 온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앞날을 비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그것이 바로 우리의 토속신앙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것, 우리의 토속신앙을 바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속인들이 바로 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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