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최근 문을 연 ‘서울책보고(寶庫)’에 들렸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잠실나루역 근처 유휴공간에 있던 가건물을 리모델링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공공헌책방이다. 국내 대형서점과 온라인 중고서점의 영향으로 점차 설 곳을 잃어가는 영세 헌책방을 살리기 위해 서울시가 발 벗고 나선 프로젝트이다. 약 500평 규모인 ‘서울책보고’는 서점이라기보다는 책을 소재로 한 커다란 예술작품 같았다. ‘책벌레’를 형상화해 누에 모양의 구불구불한 조형물로 꾸민 서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공간에 청계천에 있던 25개 헌책방이 독립적인 서가를 차리고 약 12만 권 헌책의 새 주인을 찾고 있었다.

  ‘서울책보고’에는 절판된 책부터 최신 도서까지 약 2천여 권의 책을 열람할 수 있는 독립출판물 코너도 있었다. 이외에도 명사의 기증도서 코너와 교과서 및 동시집 초판본 특별전도 있었다. 또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지역주민 연계 프로그램, 개인 및 가족단위 독서 프로그램을 연중 열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책보고’는 명칭 그대로 책의 보물창고였다. 마침 주말을 맞아 많은 시민이 살 책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도 눈에 많이 띄었다. 빈 공간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철학자 안병욱은 “책 읽는 민족은 번영하고, 책 읽는 국민은 발전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책에 관심이 많고 책읽기를 즐기는 우리 국민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은 영원히 번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도 1만 원에 글쓰기 책, 수필 책, 소설 책 등 3권을 사들고 나왔다.

  ‘서울책보고’를 돌아보고 아쉬운 점도 많았다. 먼저 책 분류가 되어 있지 않아 관심 분야 책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책을 고르기 위해서는 25개 서점 별 서가를 일일이 돌아볼 수밖에 없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부부교수 소장 책 기부 코너에는 책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개인정보가 가득 담긴 대학동문 인명록도 있었다. 유명교수가 간직했던 책이기에 기증 받았는지, 앞으로 책 기부를 원하는 일반인의 책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방침은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서가에 꽂혀있는 책 중에는 저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도 있어 관리상 문제가 있어 보였다. 어차피 서울시가 투자한 시설이라면 25개 헌책방만을 위할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헌책도 기부 받거나 저렴하게 사들여 판매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서관이 소장했던 책이나 개인이 읽은 책 중 불필요하게 된 책을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다. 공공 도서관에 기증하려 해도 원치 않는다. 어쩔 수 없어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책이 재활용품 배출 시 폐지로 처리되고 만다. 수년전 돌아본 캐나다 벤쿠버시에는 동네 헌옷 수거함 옆에 헌책 수거함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여기서 수거된 책은 복지관 등 공공시설에 기증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연암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책을 베개로 쓰지 말고, 그릇을 덮지 말며, 흐트러뜨려 놓지도 말라. 책에 쌓인 먼지는 깨끗하게 털어내고, 책을 좀먹는 벌레는 없애야 한다.”고 했다. 책을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다. 연암이 오늘에 살면 책을 버리는 우리 현실을 목도하고 통탄할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청계천 헌책방을 즐겨 찾았다. 1960년대 청계천에는 헌책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그곳에 가면 볼 게 많았고, 이 책 저 책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빠듯한 용돈으로 읽고 싶은 책 한두 권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서울책보고’를 찾는 시민들이 현대판 청계천 헌책방인 ‘서울책보고’에서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쌓게 되기 바란다.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느니 책으로 그득한 헛간에 사는 편을 택하겠다.”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서울책보고’가 바로 책으로 꽉 찬 헛간인 셈이다. ‘서울책보고’를 나오면서 앞으로 ‘서울책보고’는 많은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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