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 열정적이고 베푸는 멋진 삶을 보다
[허정회 칼럼] 열정적이고 베푸는 멋진 삶을 보다
  • 허정회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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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회 작가
허정회 작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 꼴로 등산 다닌 지 15년째다. 모임 초기에는 제법 등산다운 등산을 했지만 2,3년 전부터는 주로 둘레길 위주로 산행을 한다. 지난주에는 서울 강서구에 있는 양천향교-궁산 근린공원-궁산 땅굴-겸재정선미술관을 돌아봤다. 

  양천향교역에서 만나 궁산 초입에 있는 양천향교(鄕校)에 들렀다. 마침 내부 수리중이라 경내를 돌아볼 순 없었지만 그 입지와 규모만으로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었다. 양천향교는 현존하는 서울의 유일한 향교다. 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운영되던 지방에 있는 국립교육기관이었다. 향교에서는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오경(五經)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四書)를 가르쳤다. 향교는 서원(書院)의 발흥으로 점차 쇠미하였고 1894년 과거제도 폐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어 궁산 근린공원으로 들어섰다. 궁산(宮山)이라는 명칭은 양천향교에 공자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궁(宮)으로 여긴데서 유래한다. 임진왜란 때는 궁산 산성에 관군과 의병이 진을 치고 한강 건너편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권율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쳤던 곳이다. 궁산은 이처럼 조선의 도성을 방비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군부대가 주둔했다. 산마루에 오르니 멋진 한강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소악루(小岳樓)가 있었다. 중국 명승지 악양루(岳陽樓)에서 이름을 차용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겸재 정선이 이곳 소악루에 올라 뛰어난 작품 여러 점을 남겼다. 

  궁산에서 내려오면서 궁산 땅굴 전시관에 들렀다. 궁산 땅굴은 무기와 탄약과 같은 군수물자를 저장하기 위해 인근 주민을 강제 동원해 굴착한 가슴 아픈 우리 역사 현장이다. 이곳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김포비행장과 한강하구를 감시하는 일본 군부대 본부가 있었다.  이 땅굴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폭 2m, 높이 2m, 길이 70m에 달한다. 2008년 우연히 발견된 궁산 땅굴은 2018년 5월 일본 강점기 만행을 청소년에 알리기 위한 전시 및 체험관으로 거듭났다. 

  궁산 땅굴 바로 건너편에 있는 겸재(謙齋)정선(鄭敾)미술관으로 발을 옮겼다. 겸재는 1676년 태어나 1759년 8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행정가이자 화가이다. 벼슬로는 종6품 하양현감(현 경산시장), 종5품 청하현감(현 포항시장), 종5품 양천현령(현 강서구청장)을 거쳐 종2품이던 동지중추부사까지 지내 당시 화가로는 최고의 직위를 누렸다. 그는 실제 경관을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기보다 과장과 변형을 통해 ‘느낀대로’ 대상을 표현했다. ‘본대로’ 그린 실경(實景)산수화와 대비되는 화풍이다.

  그는 서울 북악산 밑 유란동(현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 주변에 있는 북악산, 인왕산을 그리던 솜씨를 금강산과 그가 현감을 지내던 영남지방의 풍경으로 확대시켜 진경산수화풍을 정립했다. 그는 다작 화가였다. 얼마나 많이 그렸으면 그가 사용했던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 해 겸재미술관 옆에는 이를 기리는 붓 조형물이 서있다. 그의 ‘천금물전(千金勿傳)’(천금이라도 팔지 말라.) 뜻을 잘 받든 후손들이 작품을 고이 간수해 아직도 400여 점의 원화(原畵)가 전해지고 있고, 그 중 2점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오늘 나들이 중 겸재정선미술관에 들러 그의 예술세계를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이해하게 된 것은 뜻밖의 큰 수확이었다. 특히, 우리들에게 그림 하나하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준 두 분 해설사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 분은 한국화를 전공한 여성이었고, 또 다른 한 분은 공직에서 퇴직 후 허준박물관에 이어, 겸재미술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남성이었다. 이 분들의 열정적인 해설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수박 겉핥기 식’ 감상이 되었을 것이다. 두 분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의무감이 아닌 자신이 원해서 어떤 일을 할 때 더 열정적이고 더 베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정회 칼럼니스트  bodo@n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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