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본부/ndnnews】안홍필 취재국장= 2년 전 브라질 리우올림픽 여자유도 최경량급 선수의 결승전을 보고 난 눈물이 날 뻔했다. 생전 처음 본 그 선수가 단지 내 어린 조카를 닮았다는 이유로... 작은 체구지만 당차 보이는 그 선수는 결승전에서 안타깝게 지고 말았고 은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음에도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나 역시 금메달을 바랐었고 선수-조카-나로 연결되는 감정이입을 통해 함께 슬퍼했다. 단지 내가 사랑하는 조카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없는 내게 조카들은 삶의 활력소이자 이유를 선사한다. 하물며 내 아이라면 어떨까.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승전보에 귀를 기울이던 어느 날 새벽 주취자가 편의점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처음 본 아저씨의 인상은 여느 술 취한 사람과는 달랐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양복, 단정한 머리스타일, 나이 들어 주름 진 얼굴이지만 기품이 있었다. 이마와 눈 밑이 찢어져 피를 흘리는 중에도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괜찮다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단호함에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고 비록 활력징후 상 큰 이상이 없었지만 정신병원에 아내와 딸이 있어 집에 아무도 없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에 불안감을 떨치기 쉽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귀소 후 얼마 간 지났을 때 들어온 신고는 분명 그 아저씨였다. 신고자인 아파트 경비원의 얘길 들어보니 인상착의, 상처부위로 보아 틀림없었다. 집으로 들어갔다는 말에 찾아간 곳은 널브러진 술병, 먹다 남은 음식물 등으로 어지럽혀 있어 감히 신발을 벗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목동의 비싼 아파트, 널따란 평수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술병 옆에 얼굴은 피범벅이 된 채 누워 자고 있는 아저씨를 본 순간 어떻게든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구급대원들과 경비원의 협박(?) 속에서도 아저씨는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점점 지쳐가는 나도 모진 말을 쏟아냈다.

“아저씨 이러다 죽어요. 빨리 병원 가세요!”

“아니요, 나는 병원 안갑니다. 우리 119대원들 고생하는 거 아는데 난 병원 안갑니다. 내가 위생병이었어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구급함에서 거즈와 소독약을 꺼내 스스로 얼굴을 닦는 모습이란... 실랑이가 계속되고 30여 분쯤 지났을까 어렵게 아저씨의 아내와 연락이 닿았다. 아주머니와 통화를 하니 궁금증이 하나 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현재 아저씨의 딸은 며칠 전 자해를 시도해 병원에서 치료중이고 아주머니는 그 곁을 떠날 수 없다. 다른 딸은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어 당장 집에 올 수 없는 상황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양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의 상처는 찢어진 얼굴이 전부가 아니었다. 딸아이의 자해를 본 아비의 마음에 그어진 아물지 않을 자국을 난 볼 수 없다. 우리는 두 번째 거부를 당하고 돌아왔다.

교대시간 즈음 아저씨의 집 주소로 다시 신고가 들어왔다. 교대근무자에게 대략적으로 설명을 했고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들려온 후문으로는 병원에 있던 딸이 아빠를 설득해 응급실 이송이 가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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