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고풍스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였다.

초반부터 아기자기하게 불새를 이끌어나가는 필하모니아의 불새 연주에 역대 불새연주에서 볼 수 없었던 관객의 반응이 전례없이 뜨거웠다. 이반 왕자가 불새의 도움으로 사악한 마법사 카쉬체이를 물리치고 사랑하는 공주 자레브나를 구출한다는 줄거리가 음악으로 조곤조곤 표출되는 듯 했다.

내게 필하모니아 내한공연의 가장 인상적 장면으로 남아있는 것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지휘하고 정경화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2010년 5월 4일의 연주장면이다. 정경화 재기무대로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날 정경화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을 다시 무대에서 켜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필하모니아 내한공연의 최고 명장면을 연출했다.

10월 18일 저녁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은 에사 페카 살로넨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은 로엔그린 3막 전주곡과 라벨 어미거위 5악장의 앵콜곡이 이날 서곡이 없는 아쉬움을 상쇄시키며 명문악단의 저력을 과시한 연주회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마주친 필하모니아의 단원들은 런던심포니와 런던필은 자신들의 밑이라며 자신들이 런던 최고 오케스트라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에스더 유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좀더 과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는데 다음날 크리스트앙 짐머만이 연주의 바통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분투(奮鬪)한 연주였다. 에스더 유의 이런 아쉬움은 헨델의 파사칼리아 앵콜곡으로 상쇄되긴 했지만 사실 몇 개월전부터 티켓이 팔려나가는 티켓파워나 세계 클래식계의 지명도에서, 또 올해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인 것을 감안 짐머만이 불안의 시대 교향곡 2번을 선곡한 선곡 측면에서도 이번 필하모니아의 내한공연 관심은 짐머만에 상당수 쏠렸던 것이 사실이다. 짐머만은 번스타인과 런던심포니와 1986년 녹음된 유트브 영상보다 사이먼 래틀 및 베를린필과 올해 봄 녹음한 CD 번스타인곡 불안의 시대 교향곡 2번에서 함께 연주의 빛을 발하는 생생한 감동을 전해준다.

에사 페카 살로넨과의 재회도 10년전 먼발치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 객석에서 LA필과 조우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살로넨의 지휘는 당초의 기대를 훌쩍 넘는 것이었다. 에사 페카 살로넨의 쉼없는 혁신은 21세기 클래식 음악을 새로이 포지셔닝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를 몰아간다는데 지휘자로서 그의 혁신이 체감되는 무대였다.

외국의 세계 수준의 최고 교향악단이 내한공연을 펼치게 되면 국내 교향악단에서 만날 수 없는 신선한 영감을 주는 순간들을 만나는 체험을 하곤 한다. 필하모니아는 그런 체험을 선사하기에 손색없는 연주를 들려줬다.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