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이 현을 덮지 않는다.”

소문대로였다. 특유의 세련된 지휘와 깔끔한 음악적 해석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이탈리아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한국 오케스트라를 최초 지휘한 KBS교향악단의 연주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내가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2011년 11월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2005년 이후 세 번째 베를린필의 내한공연 이튿날의 연주 실연으로 듣던 그날의 흥분을 되살리게 했다. 세세한 세기가 살아나며 우주적 공명(共鳴)을 듣는 브루크너에 몰입하는 시간이 신생 롯데콘서트홀에서 듣는 시간이 색달랐다.

이번 파비오 루이지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를 통해 KBS교향악단의 지표는 명확해졌다. 최근 경기필이 지방 교향악단의 핸디갭을 딛고 일어서 세계적 마에스트로들을 주기적으로 초청해 연주력과 경기필의 업그레이드를 꾀하고 있는 바로 그런 지표 말이다.

KBS교향악단 연주회를 가끔 가다보면 매번 그저 그렇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관객에게 KBS교향악단의 연주력은 매번 그렇다는 획일적 상념만 주게 된다면 KBS교향악단의 미래는 없다. KBS교향악단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지난 8월24일 정명훈 효과가 느껴진 독일 거장과의 대화로 실로 오랜만에 듣는 KBS교향악단 연주에 대한 청중의 큰 박수함성에 놀랐다. 근래 보기드문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KBS교향악단이 이렇게 뜨거운 박수함성을 받았던 공연이 있었던가 싶었는데 이번 파비오 루이지 임팩트로 KBS교향악단의 지표는 국내 교향악단의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더욱 명확해졌다고 본다.

파비오 루이지의 지휘는 속도를 내지 않으면서 음악 전반에 존재하는 충만한 디테일을 온전히 구현해내는 인상적 지휘였다. KBS교향악단이 기존의 봐오던 교향악단에서 다른 오케스트라로 변신한 것 같은 향기를 느끼게 된 까닭은 지휘자단 위에서 당당하고 활력이 넘치며 그의 열정이 청중들에게 치명적으로 전염된 파이오 루이지의 지휘를 보게 된 행운 때문이다. 파비오 루이지 효과 때문일까, 이날 KBS특별연주회에는 서울시향의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기념 캔디드 오페레타 공연이 비슷한 시간대에 겹쳤음에도 국내 저명 지휘자들과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칼럼니스트들의 면면이 대거 눈에 띄어 이날에 쏠린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파이오 루이지의 이번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 3악장의 미완으로 끝나듯 아쉬움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모차르트 안의 가장 깊은 내면의 노래를 들려준 임동혁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 연주에 앞서 이탈리아 지휘자인 만큼 레스피기가 작곡한 세곡의 교향시 중에서 한곡 정도 로마의 분수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 같은 서주 형태의 한곡 정도만이라도 연주했더라면 2013년 5월 KBS교향악단 바그너 특별연주회 못지않을 더 풍성했을 특별 연주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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