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여, 고결한 계절들의 여왕이여 / 양여천 시인

 

봄이여, 고결한 계절들의 여왕이여
그대 이젠 빈사의 몸이 되어
그저 뿌옇고 흐린 시야속에
이도저도 아닌 계절이 되어
찬바람속에 떨다가 느닷없이 뜨거워지는 햇살에
허겁지겁 얇디얇은 꽃치마를 꺼내어 놓는
황급하게 스쳐 지나가는 직장인의 아침처럼
더이상 느낄 수도 없고 손에 쥐어지지도 않는
땀내 찌든 월급봉투처럼 손아귀를 빠져 나가는
분명 거기에 있었으나 있지도 않은 신기루가 되어
고단한 몸을 누일때면 뜨거운 자외선의 태양속에
말라비틀어진 먼지덩어리로 발밑을 굴러갈 것인가?
봄이여, 그대 청초하고 새침한 새댁처럼
그 뺨에 찍은 연지곤지처럼
연초록의 꽃봉오리 푸르고 푸르러 꼭 오무린 아가손처럼
때론 높고 때론 잦아들던 언덕을 넘어오던 구름처럼
아리고 매서워도 아지랑이 품고 한없이 따사로웠던
언젠가는 다가오고 언젠가는 잠시 품에 안겨
어느새 무릎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 꿈처럼
그렇게 와- 하는 아우성으로 피고 아가 숨결처럼 잔잔한
봄이여, 시름하고 몸부림치는 지구의 대기속에서
너는 단 한 번이라도 예전처럼 꽃단장한 아가씨처럼
한 번 더 살금살금 나른한 오후에 단잠을 깨면 어느새
살포시 무릎위에 개나리 진달래 철쭉 산수유 따다가 묶어
한다발 한아름 안겨놓고 다녀갔음을 알게 해주겠니?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