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초 친구들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왔다. 말레이시아는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소재하고 있는 말레이반도의 동(東)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섬의 약 1/5을 차지하고 있는 서(西)말레이시아로 이루어져있다. 보르네오섬은 세계에서 세 번째 큰 섬으로 우리나라보다 약 8배 넓다. 이중 70%는 아직도 미개척지로 남아있다 한다. 팀버트리(timber tree)와 같은 좋은 목재감이 많은 보르네오섬은 브라질 아마존밀림 다음으로 ‘지구의 허파’로 불린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로, 이중 2개 주가 보르네오섬 북서부에 있다. 국가를 상징하는 왕은 각 주 13명의 왕 중 9명이 5년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로 다수당 대표가 수상이 된다. 말레이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 달러이고 인구는 약 3200만 명이다. 이들은 말레이계 60%, 중국계 30%, 인도·파키스탄계 10%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원시림 목재를 벌목하기 위해 중국인을 데려왔고, 고무 채취를 위해 많은 인도인이 유입되었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고 그밖에 영어, 중국어 등도 널리 쓰인다. 영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은 영향으로 영어가 통용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영어철자를 단순화해서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식당을 의미하는 restaurant은 restoran으로 쓴다. 

  코타키나발루는 보루네오섬 북부에 위치한 사바주 주도(州都)이다. ‘코타’는 도시, ‘키나발루’는 ‘영혼의 안식처’를 뜻한다. 우리나라 면적과 비슷한 사바주에는 약 350만 명이 살고 있다. 코타키나발루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발루산이 있다. 해발 4095m로 대만 옥산(3952m), 일본 후지산(3776m)보다 높다. 만년설은 없다. 해발 3000m 이상은 암벽으로 되어 있어 낮 동안 태양열로 데워진 바위에 눈이 내려도 금방 녹기 때문이다. 키나발루산은 다양한 동식물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일찍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말레이시아 역사는 15세기 말레이반도 남부에 세워졌던 말라카왕국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끊임없이 세계열강의 식민지가 된다. 목재, 고무, 금, 주석, 향료 등 풍부한 천연자원이 많기 때문이었다. 1511년 포르투갈이 점령한 이후 연이어 네덜란드가 지배를 하다가 1824년 영국보호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정 하에 있다가 종전 후 다시 영국보호령이 되었다. 그러다가 1957년 말라야연방으로 독립하게 된다. 무려 약 450년간의 식민통치가 종식된 것이다. 

  코타키나발루 제셜턴포인트(Jesselton Point)항 입구에는 1963년 영국사령부가 최종 철수할 때 당시 최고 통치자였던 윌리엄 구드경(卿)과 시민이 작별하는 대형사진이 걸려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지배자-피지배자 간 있을 법한 적개심보다는 서로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 말레이시아인은 지금도 영국을 종주국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식민지로 있을 때 나라 발전의 기틀을 세웠고 영국인들로부터 서양문물을 배웠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적대적인 민족감정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말레이시아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도 자유롭게 신봉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먹지 않고 술은 맥주 정도만 허용된다. 다민족 국가이기에 그들의 고유 종교는 존중한다. 3개 종교의 주요 경축일은 모두 쉰다. 공휴일이 하도 많아 무슨 날인지도 모른 채 쉴 때도 있다 한다. 그들은 하루 5번 기도를 한다. 덥기 전에 아침 일찍 일과를 시작해 일몰 전에 끝낸다. 코란에 해가 진 이후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보다 경제력은 떨어지지만 그들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천연자원이 많고 날이 춥지 않아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향도 있겠지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지나친 욕심을 갖지 말라는 종교의 힘도 커보였다. 2017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한 행복순위는 한국이 56위인데 비해 말레이시아는 42위였다. 행복은 재력순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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