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로부터 신선한 소식을 접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가족장을 지냈다 했다. 그 친구는 평소 교분의 폭도 넓고 지인의 대소사를 잘 챙기기에 부고를 했으면 많은 문상객이 조문을 다녀갔을 것이다. 필자 또한 그와는 50년 지기로 부음을 들었으면 만사 제켜놓고 문상을 가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친구네는 친척에게만 알렸고 요양병원에 딸린 작은 장례식장에서 간소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이 얘기를 들은 순간 섭섭했지만 이로 인해 품격 있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 LG그룹 구본무 회장도 73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별세했다. 대기업 회장이었음에도 그의 장례식 역시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졌고 부의금이나 조화도 일절 사양했다. 게다가 그 흔한 분묘는커녕 그의 아호를 딴 화담(和談) 숲 어느 나무 밑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그가 어느 나무 밑에 묻혔다는 것조차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소탈하고 예의발라 누구든 인간미와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고 전해진다. 직원들조차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했을 정도로 요즘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재벌 갑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수목장(樹木葬)을 한 이후 우리나라 첫 국립수목장인 경기 양평 하늘숲추모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한다.

작년 연말 일본에서는 대기업 고마쓰(小松)의 안자키 사토루 전 회장의 생전 송별모임이 큰 화제가 되었다. 암 진단을 받아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죽기 전 그간 알고 지내던 지인을 호텔 연회장에 초대하는 내용의 광고를 일간지에 냈다. 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약 1천 명의 지인과 일일이 인사를 했다. 삶의 질을 우선시 해 항암 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면서 그간 고마웠고 먼저 가게 되었다는 인사말을 담담하게 전하는 TV 뉴스를 접했다. 이 방법에 공감하는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작년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고령사회는 노인 인구가 14% 이상 20% 이하인 나라를 일컫는다. 고령사회를 맞아 우리도 이제 죽음에 대한 시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저출산으로 인해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아 인구도 줄어들게 된다. 이제까지 참된 삶(well being)이 화두였다면 이제는 존엄한 죽음(well dying)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누구나 필연적으로 맞게 될 죽음에 대해 준비만 잘 해 놓으면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화장문화 증가 속도이다. 2005년 53%였던 화장율이 2016년 83%로 늘어났다. 자연보존 측면도 있지만 지리적으로 먼 고향이나 선산(先山)보다는 조상을 가까이에 모시고 자주 찾아뵙는 실용적인 세태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본다.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사전연명(延命)의료의향서와 사전장례의향서를 미리 작성해두자. 전자는 임종 직전 자신이 받을 치료 범위를 스스로 미리 결정해 놓는 것이다. 불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음으로써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자는 취지이다. 후자는 부고의 범위, 장례 형식, 부의금 및 조화 접수 여부, 수의, 관, 시신 처리 방법 등을 명시해 자신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미리 후손에게 알려주는 문서이다. 이럴 경우 당사자는 자기 뜻대로 장례절차가 진행되게 될 것에 마음이 놓이고, 큰일을 당해 경황이 없는 후손들은 복잡한 절차를 두고 우왕좌왕 하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위에 예를 든 안자키 회장처럼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을 초청해 ‘생전송별회’를 여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빈소에는 고인이 건강할 때 미리 녹화해 둔 영상을 조문객에 방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우리 장례문화는 결혼문화 못지않게 우리사회 적폐(積弊) 중 하나이다. 고인의 삶을 기리며 엄숙하고 품격 있게 지내는 장례문화가 하루빨리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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