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 대한민국 공장, 울산을 걷다
[허정회 칼럼] 대한민국 공장, 울산을 걷다
  • 허정회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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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연휴를 이용해 4박5일 간 친구들과 해파랑길 걷기에 나섰다. 해파랑길은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까지 770km에 달하는 동해안 둘레길이다. 이번에는 울산 정자항부터 울산대공원까지 54km 남짓 걸었다. 이제까지 모두 670km를 마쳤으니 부산 종착역까지 불과 100km밖에 안 남았다. 이번 가을과 내년 봄 두 번만 더 하면 대장정의 막도 내리게 된다.

걸으면서 가까이에서 본 울산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공장 그 자체였다. 세계 최대 조선소 현대중공업 공장지대를 통과하는 데만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다.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전경은 장관(壯觀)이었다. 조선(造船), 자동차, 석유화학과 같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끄는 주요 동력은 다 모여 있었다. 울산의 젖줄 태화강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과 산업시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멋진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개인소득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어선지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했고 활기찼다.

해파랑길이 주는 행복은 다양하다. 지방에 살고 있어 평소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 으뜸이다.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공자 말씀 그대로다. 이번에도 울산에 살고 있는 친구를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났다. 근 50년만이지만 만나자마자 어렸을 때 얘기로 웃음꽃이 만발했다. 산 넘어 무려 10km가 넘는 먼 길을 동행했던 개와 정 들어 마지못해 헤어졌던 적도 있었다. 바다양식장에서 멍게 한 광주리를 만 원에 사 실컷 먹기도 했다. 이번에는 울산대공원 정문 가는 길을 안내해주느라 30분 이상 함께 걸었던 두 아낙의 친절에 감동했다.

우리는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거의 모든 끼니를 스스로 해결한다. 새벽밥 먹고 아침 6시 경 숙소를 나서서 대여섯 시간 동안 천천히 15km 남짓 걸은 후 집에 돌아와 점심을 해먹는다. 오후에는 각자 자유롭게 목욕을 가기도 하고, 낚시를 하기도 하고, 바둑으로 친구와 수담(手談)을 나누기도 한다. 우리끼리 해먹는 식사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이러면서 우리는 숙명적으로 다가올 ‘혼자 살게 될 때’를 대비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부담 없는 경비는 그저 절로 따라오는 덤일 뿐이다.

우리 삶은 일과 휴식으로 구분된다. 이중 일은 존재의 수단과 가치와 관련 있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휴식을 말할 때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행을 가장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대개 풍광, 역사, 음식, 쇼핑, 치안, 기간, 비용 면을 고려하게 된다. 이 기준으로 볼 때 해파랑길 걷기는 최상의 여행 후보지라고 할 수 있다. 위에 꼽은 여행의 모든 요소를 만족스럽게 충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번에도 부산에서 출발했다는 50대 중후반의 두 여인 한 팀만을 만났을 뿐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데 왜 해파랑길은 파리를 날릴까? 이제까지 해파랑길을 걸어오면서 품어온 궁금증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걷기에 알맞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이 열린 지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아직도 길이 온전치 않다. 어떨 때는 갈림길에 안내 표지 리본도 없어 우리처럼 해파랑길 ‘졸업’을 앞둔 사람들도 길을 헤매기도 한다. 각 지자체가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관리해야 할 대목이다.

경제적이고 걷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구조를 갖춘 숙소가 제대로 없는 것도 문제이다. 국공립 자연휴양림 같은 시설이면 최상이겠으나 해파랑길 코스와 멀리 떨어져 있고 예약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이니 언감생심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처럼 값싸고(1인당 15000원 꼴) 편리한 숙소가 군데군데 있다면 해파랑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멋진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허정회 칼럼니스트  hihuh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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