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젊은 청년들 베트남에서 일해보자”......“좋은 사람 소개시켜드립니다”

베트남/하노이 코아서치 김낙기 대표

베트남 하노이 서치펌 ‘코아서치’ 김낙기 대표

“한국의 젊은 청년들 베트남에서 일해보자”......“좋은 사람 소개시켜드립니다”

 

서치펌(search firm)은 고위급 핵심인재 즉 고급인력을 스카웃해 기업에 소개 해 주는 곳을 칭하는 말이다. 일본말로 헤드헌팅이라고도 한다. 사람을 구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의미지만 단순 노무자들을 소개하는 직업소개소와는 구분된다.

베트남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10년 전에 비해 대학 졸업자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이직률은 여전하고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이 드물다.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서치펌 ‘코아서치’는 기업을 상대로 고위급은 아니지만 대학을 졸업한 현지인들 혹은 베트남어가 능통한 한국인 등 관리급 인재를 찾아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고 일정기간 보증을 해준다.

코아서치의 김낙기 대표는 한국에서 실업난으로 고민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베트남에 와서 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좋은 사람 소개시켜드립니다.

하노이 쭝화 단지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 곳 쭝화 단지에서 대장금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가랑노래방 사거리에 작은 간판을 걸어놓은 단독건물 ‘코아서치’가 있다.

베트남의 서치펌, ‘코아서치’의 김낙기 대표는 지난 2007년 하노이에 들어왔다. 베트남에 들어 온 지 올해로 11년차다. 한국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베트남에 들어온 그는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든 베트남 시장을 보고 서치펌을 차렸다. 김 대표는 “당시 한국인 기업들이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 매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저희 회사에서 신문에 낸 광고 한 장에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몰려들어 소위 난리가 났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아내가 하고 있는 사업이었기에 접근하기가 용이했고 능력 있는 인재를 찾아 기업에 소개를 하고 그 인재가 5년, 10년 장기근무를 하고 있을 때가 가장 보람되고 흐뭇하다”고 말했다. “사업을 차릴 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독립해 같은 업종을 차렸을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럴 일도 아니었다”며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인생의 의미를 보다 더 통 넓게 바라보는 노신사가 되었다.

 

 

 

‘다 되고, 또 다 안 되는 나라 베트남’

베트남에 대해 김 대표는 이렇게 정의했다. “다 되고, 또 다 안 되는 나라” 그는 A, B 라는 일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어떤 이는 A는 되고, B는 안 되더라 하고 또 다른 이는 A는 안 되고 B는 되더라 하는데, 이 두 사람의 말은 모두 맞다. 베트남에서는 상황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관리자에 따라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다. 촌지 문화와 인맥이란 것이 있어 안 되는 일도 될 수 있고, 되는 일도 안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저것 생각해서 들어와도 생각한대로 안될 수 있으니 베트남에 들어오고 싶다면 와서 부딪치라”고 조언했다. 다만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은 위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세금 문제는 철저해야 한다. 벌금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할 때 첫째 직원들 월급을 밀리면 안 되고, 둘째 선교 활동을 해서도 안 되며 셋째 여자 문제가 발생해서도 안 되고 넷째 법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우리와 너무 다른 베트남 문화와 역사

베트남에 문을 두드리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김 대표는 두 시간 가량 강의를 해주었다. “베트남은 중국과 또 다르다”며 “나라마다 다른 특성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베트남에서 사업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의 침입으로 중국에 병합된 후 939년까지 중국의 지배를 받은 나라다. 또 1883년 ‘아르망조약’으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세력이 약해진 프랑스가 물러날 때 우리처럼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때문에 외국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정이 많은 한국인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김 대표는 베트남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인정한다는 의미

“사장이 뭐라고 하면 팔짱을 끼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직원들이 많은데,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사장들은 뒷목 잡을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그런 표현은 당신을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한국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맞추지 않는 것이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부정의 표시였다. 사장이 훈계를 하면 웃는 직원이 많다. 사장은 진지한데 직원이 웃으며 “험싸우 험싸우”(베트남어로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들은 절대로 ‘잘못했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험싸우’라는 단어에는 미안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김 대표는 강연했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사장이 계속 다그치게 되면 그들은 “그럼 일 그만 할게요. 나갈게요”하고 그만둔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라 사장과 직원 사이에 갑을관계라는 것이 없다. 직원들의 인식이 ‘당신은 나라에서 사장하라고 해서 사장이고 나는 노동자라고 해서 노동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할 일이 있으면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밤을 새서라도 다 해 놓고 내일은 또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오늘 일을 다 해놓지 않는다. 하루의 일을 일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일을 더 많이 해서 내일 일이 없어지면 일당을 못 받는다고 생각한다. 같은 공산국인 중국과도 또 다르다. 중국은 국가적으로도 어떻게든 우리의 기술을 빼내려 하고 배우려고 하는 악착같은 면이 있는데 베트남은 그러한 것도 덜하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베트남에서의 삶은 고아들을 돕는 것, 사업은 부수적인 것.

김 대표가 베트남에 들어온 목적은 사실 고아원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 고아원들을 돌아보았는데 이곳 베트남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베트남에 들어 왔는데 일을 하지 않으니 당국으로부터 혹시 ‘선교사가 아니냐’고 의심을 받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선교 활동이 금지되고 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코아서치’다. 그는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먹고 살 만큼 벌면서 아이들을 보살펴 주는 게 그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운영을 할 수는 없고 시골 ‘핫떠이’의 한 고아원에 매월 3,000불을 지원하고 필요한 물건을 후원한다”는 그는 “시간이 날 때 마다 아이들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삶의 낙”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인근 대학교에서 영어는 물론이고 인문 사회학과 노동학을 한국어로 가르치는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대학교 총장을 하셨던 아버지 때문인지 가르치는 것도 재밌다”는 그는 “베트남 생활에 만족한다. 죽는 날 까지 베트남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살 것”이라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했다. 김낙기 대표의 아름답고 넉넉한 삶에 찬사를 보내며 고아원의 아이들도 그와 함께 보다 더 건강하고 반듯하게 성장하길 바래본다.

 

“베트남 사업과 관련해 더 많은 것이 궁금하다면 코아서치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좋은 사람도 함께 소개 시켜드립니다”

(코아서치/*tel:04-6293-1705 *mobile:016-5512-6771 *I.Phone:070-4252-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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