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아미산 서림사 주지 현각 스님

                                         

                                            수천년 세월 변함없는 진리는 부처님의 말씀,

                                    대중포교로 바른 세상을 이끌다.

                                                  대한불교 조계종 아미산 서림사 주지 현각 스님

 

 

불교를 현대화 하여 생활 속에 불교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스님이 있다. 그는 인도와 중국을 거쳐 범어, 인도어, 중국어로 기술된 불경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것을 우리의 것, 한국의 불교로 다시 재정립하여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생활 속에 불교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로 부산 사하구 다대동 아미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서림사 주지 현각 스님이다.

현각 스님은 조계종 원로 스님으로 중앙불교신문, 영남불교신문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불교 방송 운영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팔순이 훌쩍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 과정을 거친 학구파다. 그가 교리에 매진하는 이유는 부처의 진리를 대중들에게 보다 쉽고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포교하기 위함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불입니다. 성불이라는 것은 부처가 되는 것인데 그것은 스님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고 현실적으로 대중들은 아니거든요. 대중들에게는 불교의 진리를 포교해야 합니다” 현각 스님은 ‘왜 사람들이 악행을 하면 안 되는지’, ‘왜 선행을 쌓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대중들에게 쉽게 알려주는 것이 포교라고 했고 궁극적으로는 성불로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윤회(輪廻)와 업(業)

사람들이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윤회 때문이다. 윤회는 중생이 죽은 뒤 그 ‘업’에 따라 육도(六道)의 세상에서 생사(生死를) 거듭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잘 살고 못 사는 것도, 잘 되고 못 되는 것도 누구의 탓이 아니라 스스로가 지은 업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부자가 되고 싶으면 재물을 나누어야 할 것이요. 따뜻한 마음을 받고 싶거든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각 스님은 부처는 ‘극락에 보내준다, 지옥에 보낸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절대 없다며 극락도 본인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고 지옥도 본인의 업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걸 깨치면 나쁜 짓 할 수 있겠어요? 내가 지은 업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데?”

그는 3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전해 내려오는 학문과 진리는 불교 밖에 없다고 했다. 절대라고 믿었던 타 종교들도 그러하고 과학과 의학까지도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수정되고 바뀌고 변했음을 지적했다. 반면 불교 속에 담긴 철학과 과학, 의학은 그 몇 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단 한 줄도 변하거나 바뀐 것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불교는 종교를 넘어 세상의 진리예요. 이 진리를 알면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부자 되고 싶어요? 극락 가고 싶어요? 그러려면 불교를 배워야 해요. 그러면 부자도 되고 극락도 갑니다.” 스님은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차가 진하게 우러난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마음의 분별을 알아채라

“극락에 가고 싶죠?” “지옥에는 가기 싫고요?” 스님이 물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죠. 누가 지옥에 가고 싶어요, 스님”

“......” 스님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란 게 있어요. 마음이 없으면 시체지”

“그렇죠”

“이 마음만 잘 다스리면 하나도 괴로울 게 없는데 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괴로운 거에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요?”

“분별하지 말아야 해요. 마음에서 나오는 분별을 딱 알아차리고 멈추면 되요”

현각 스님은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힘들고 괴로운 이유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별 때문이라고 했다.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 부럽다 등등 마음이 분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분별을 알아차리고 멈추면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여기 신도들이 1천여 분이 오시는데 모두 제각각이에요. 말 함부로 하는 사람, 거만한 사람, 욕심 많은 사람, 걱정 많은 사람, 예민한 사람, 순한 사람, 약한 사람,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죠. 그런데 그 사람들을 제가 다 분별하면 저는 여기 못 있습니다” 스님은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붓들 중 오랜 세월 손때가 묻어나는 붓을 하나 꺼내 먹물에 찍어 화선지에 굵은 글씨를 써 내려갔다. ‘수처현처왕, 미분선악호학’ “사회생활을 하면 속상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것을 일일이 다 분별하면 더 괴로워요. 그러니 그것을 분별하지 말고 선도 악도 없다는 것을 알아채야 합니다.” 결국 극락도 지옥도 마음의 분별에서 나오는 것임을 스님은 일깨워주고 있었다.

10대 후반에 불가의 인연을 맺고 출가해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불교의 교리를 배우면 배울수록 그 매력에 빠져 출가를 하게 되었다는 현각 스님은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이 글만 보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죠. ‘마하는 넓다’.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극락에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즉 ‘넓은 지혜로 극락에 갈 수 있는 경전’이라는 뜻이지요. 이렇듯 의미를 풀어낼 때 해석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 가지 책만 봐서는 안 되고 여러 책을 두루두루 읽고 그 속에서 바른 해석들을 찾아야 합니다. 불교의 진리를 포교하는데 스님이 코끼리 장님 되면 안 되잖아요?”

 

기다리는 종교가 아닌 다가가는 종교로의 변화

조선조 시대, 실학자들에 의한 억불정책으로 불교는 깊은 산으로 쫓겨나 500여년의 세월을 은둔의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불교의 문화인 것처럼 굳혀져 버렸다고 현각 스님은 탄식했다. 현각 스님은 오늘날 불신(不信)으로 치닫는 사회를 바로세우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의 진리인 불교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포교의 중요성을 더더욱 강조했다. 또 봉사 활동과 복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법당에 앉아 신도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종교가 아닌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대중들이 많은 절 밖으로, 도시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종교로 변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봄바람에 은은한 풍경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경내 위로 짙푸른 아미산 자락 아래 황금빛 옷을 입은 장신의 아미타 불상이 온화한 미소로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래의 부처라고 하는 아미타 불상 앞에 서서 현각 스님의 원(願)대로 진리를 깨달아 모두가 행복해 지는 바른 세상이 오기를 가만히 합장해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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