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구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자식을 구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 이은구 취재 본부장
  • 승인 2018.05.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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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틴푹사 팃 후예 틴 스님(조벳한)

베트남 불교는 지리상으로는 동남아에 위치하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그 연혁을 보면, 동북아 등지에서 번성했던 대승불교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고대 중국 월나라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월남이라고 붙여진 베트남은 이곳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인물로 중국 후한대의 승려 모자를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전부터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승려가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한문 불교도 그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의 수당오대에 선종의 3조인 승찬을 만나고 온 남천축 출신의 사문인 비니다 지류로부터 새로운 선종파를 형성하게 되며, 그중에서 선종의 백장 회해의 문하에서 나온 보곤통에 의해 크게 발전하게 된다.

이상 베트남 불교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지금부터 한국인 2, 이른바 라이따이한(한국인과 베트남인의 혼혈)으로 어머니의 나라 베트남에 터를 잡고 살아가며 이러한 베트남 불교계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틴푹 사찰의 주지 스님이신 팃 후예 틴 스님, 그리고 그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역사의 아픔, 그러나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사람들

라이따이한, 이른바 한국인 2세들에 대해서, 이들은 초반에 대한민국이 베트남보다 잘 사는 나라고, 나는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두고 당당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감사하게도 이들을 도우며 그들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게 돕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들의 상황을 악용하여 사정을 어렵게 하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찬조금을 다른 곳에 유용하게끔 하는 경우도 빈번해 결코 넉넉한 형편은 아니라고. 이에 관해 틴푹 사찰의 주지 스님이신 팃 후예 틴 스님의 아버지이자 베트남 원로회 회장을 3번이나 역임한 조병기 회장은 오늘날 한인 2세들의 나이가 대략 사오십대가 되었습니다. 기성세대가 된 것이죠. 이들 모두 어려운 가운데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틴푹 사찰의 주지인 팃 후예 틴 스님의 아버지로 아들이 오늘의 거목이 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조병기 회장의 사연도 참으로 눈물겹다. 아들에게 아버지인 자신의 것을 가져다 쓰더라도 결코 남의 것을 뺏지는 말라고 가르쳤다는 조 회장.

그저 아들이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랐다는 그는, 아들인 팃 후에 틴 스님에게 전하는 인사에서 큰돈에 눈이 멀어 나쁜 마음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너의 아버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나는 너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온 늙은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은 부처님의 뜻이니, 어찌 뜻을 깊이 구하면 이뤄지지 않겠느냐.” 그의 말이 참으로 뜻깊다.

 

어느 곳에서나 진정, 한결 같은 아버지인 사람

당시 한국에도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는 조병기 회장은 베트남과 한국 양쪽의 가정에서 진정한 우리네 아버지였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쉴 새 없이 다시 해외로 나가 일했던 그였지만 그는 베트남의 아내와 아들을 잊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베트남의 아내와 아들의 생계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일도 많았다. 좋지 못한 일이 겹치면서 한국에 있던 가정이 깨지고, 이혼도 했으며, 말 그대로 몸만 나와서 다시 외국을 떠돌았던 것. 그러다 기회가 닿아 베트남의 아내와 아들 곁으로 갈 수 있게 되었고, 그때 베트남의 아내가 더는 떠돌며 고생하지 말고 이곳에서 함께 살자고 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소회했다.

그렇게 다시 가장이 되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이드부터 통역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는 조병기 회장. 한편으로는 아내 음식 솜씨가 좋아서 모아 둔 돈을 가지고 함께 인천집이라는 식당을 오픈하여 오늘날까지 여태껏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한시라도 놓을 수 없다는 조 회장이다. “그 애가 세 살 때 아버지인 내가 떠나서 20년이 지나서야 되돌아왔으니 아이가 그동안 무슨 공부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기에 더욱, 어둠 속에 잠길 뻔했던 온갖 고난을 견디고 아들이 오늘날 종교계에 귀의하여 불교계의 한 축이 되어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고. 그 가운데 어렵게 지은 절, 아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계속 도운 조병기 회장이다. “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니 부모가 어찌 돕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웃었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종교계에 한 축으로서 든든히 자리 잡은 아들, 그런 아들 팃 후예 틴 스님이 한인 2, 라이따이한으로서 베트남 불교에 귀의한 승려로서 아버지의 나라 한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항시 기도한다고 하니 어느 아버지가 이 기쁨을 마다하지 않을까.

또한 한 가지, 조병기 회장이 아들을 위해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아들이 한 사람의 불제자로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마땅히 뭇 중생들의 어려움을 굽어살필 수 있기를, 지금처럼 늘 그렇게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가 주었으면 한다는 것일 터다.

이러한 그의 뜻을 잘 이해해주는 베트남의 아내, 그리고 아들 팃 후예 틴 스님이 있어 지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조 회장. 특히 그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말을 빌어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있는 사찰과 협약, 과거 중국 승려들이 이곳에 불법을 전했던 것처럼 이 베트남에 선진 불법을 전하는 한국 사찰이 생길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인사도 전했다.

자식을 구하는 아버지의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정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던 마음에 다름 아닐까. 그를 응원한다.

 

이은구 취재 본부장  bodo@n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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