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은퇴라는 일들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슬기롭게 극복하거나 아니면 힘든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은퇴는 그동안 지내 온 내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 후반기를 설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행복편지 가족이 필자에게 보내 온 편지를 통해 은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0년대 초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잠시도 쉼 없이 정말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습니다. 마치 무엇엔가 홀려 앞만 보고 가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이 거기에 있고, 삶의 전부가 거기에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30여년을 같은 업종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좋은 분들과 교류하며 많은 것을 배우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서너 번 직장을 옮기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때마다 한 번의 쉼도 없이 연이어 일을 다시 시작했고 그래야만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숨이 차오르는 것을 부인 할 수 없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태국의 조용한 시골 골프리조트에 혼자 들어와 있습니다. 지난 3월말 종사하던 직장에서 퇴임을 하고 잠시 쉬는 기간 동안 혼자 가방을 싸 들고 집을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일어나 간밤동안 잠이나 잤는지 벌써 문 앞에서 기다리는 캐디의 마중을 받고 홀로 이슬에 젖은 페어웨이를 걸으며 이런 호사스런 시간이 제게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언제 이렇게 쉼의 공간에 있어 보았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참으로 쉼이란 시간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여유 없이 살아온 제게 잠시라도 멈춤이란 단어를 불어 넣어주고 싶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없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어쩜 참 행복의 여유가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자그마한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한 치 넘어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그저 눈앞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외골수적인 자아에 가득한 사람들의 속 좁음 조차도 이해하며 이렇게 나이 60에도 인생을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얼마간의 쉼을 통해 조금은 더 성숙된 모양새를 갖추고 다시금 생활의 현장으로 달려가겠지만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또 다시 숨 가쁜 일들로 점철된 일상을, 가슴 한구석에 조금이나마 잠재되어 있는 응어리가 있어 그것을 풀고자 달려가기만 하는 한 마리 흑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많은 혼란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동안 생각조차 멈추고 그냥 이렇게 지내보려 합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혜민스님의 글과 같이 멈추니 정말 많은 것들이 제게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목스님의“누군가 나를 힘들게 할 때는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준 고통을 떠 올려 참회하고 누군가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어 편치 않을 때는 다른 이가 내게 베푼 선행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예전과 달라질 것입니다”라는 말도 되새겨 봅니다.

이른 아침 졸린 눈 비비고 70여km의 출근길을 마다 않고 달려가고 늦은 시간 지친 몸으로 돌아와 그저 눕기 바빴던 일상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습니다.

새벽녘, 자다만 눈이 떠지면 간혹 밤새일하는 직원들 생각이 나 그길로 2교대 작업 하는 현장을 돌아보고자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쯤이면 현장 직원들 모두가 지쳐 어떤 직원은 구석자리에 앉아 졸기도 했지만, 그네들과 같이 이른 아침 믹스 커피 한잔을 나누며 같이 피로를 이겨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는 법도 익히려 합니다. 좀 힘들면 쉬었다 가는 법도 익히고 싶습니다. 신의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좋은 친구로 이어가는 법도 더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잘난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제가 그동안 행한 모든 일들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나 오늘 하루도 반성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은퇴란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또 새로운 생각과 각오를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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