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오스트리아 출신 두 젊은 간호사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외딴섬 소록도(小麓島) 한센병원이었다. 이들은 소록도병원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언어 문화 관습이 전혀 다른 낯선 이국땅으로 왔다. 당시 한센병은 천형(天刑)이라 불릴 정도로 난치병이었고, 심지어 유전되고 전염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었다. 정부는 소록도에 이들 한센인을 격리 수용했다. 소록도는 온화한 기후, 깨끗한 물과 육지와 적당히 떨어진 섬이어서 이들을 관리하기에는 최적이었다. 이렇게 한센인들은 세상과 분리된 채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두 백의(白衣) 천사는 한센인들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고 사랑으로 보살폈다. 한국의사들이 고무장갑을 끼고도 진료를 꺼려할 때, 이들은 맨손으로 상처부위를 어루만졌다. 이러한 ‘사랑의 손’은 효험이 컸다. 그들의 손을 거친 많은 한센인들의 병이 호전되었다. 이들은 동료 간호사에게 “간호는 손과 발이 부지런해야 한다. 공부는 절대 하지 마라.”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한다. 어려움에 처한 아픈 사람에게는 정성보다 더 좋은 약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그것을 평생 몸소 실천했다.

당시 정부는 이들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엄한 감시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영아원을 설립해 친자식처럼 키워냈다. 육지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소록도 출신 청년들에게는 사업자금을 대줬다. 한센인들의 자립을 위한 일자리도 마련했다. 현대적인 의료시설을 도입해 한센병 퇴치에 전념했다.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때라 한국 정부는 별 힘이 안됐다. 이 모든 걸 고국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아 실천했다. 이들은 비자연장을 위해 오스트리아에 갈 때에도 한센인 치료를 위한 모금활동에 적극 나섰다.

이들의 하루는 한센인들에게 우유를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영양소를 고루 갖춰 만든 우유는 한센인의 피가 되었다. 그들은 가끔 집에서 한센인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초청 받은 한센인들은 처음으로 인간대접을 받는데 대해 감격해 했다. 이들이 돌아갈 때는 미리 준비해 놓은 화분을 하나씩 나눠주기도 했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정작 그들은 검소한 생활을 했다.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한센인의 옷을 수선해 입을 정도였다 한다. 그들 방에는 무(無), 하심(下心), 사랑, 애덕(愛德)과 같은 마음을 다잡는 글만 벽에 걸려 있다.

이들은 우리 정부나 다른 어느 곳으로부터도 단 일 푼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려 40년 이상 소록도병원에서 봉사를 했다. 그러던 2005년 11월, 나이 들어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자신들이 오히려 주변에 짐이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작별편지 한 장을 달랑 남기고 홀연 소록도를 떠났다. 사전에 미리 알리면 ‘소록도 식구’들이 그들이 떠나도록 놓아 주지 않았을 거 같아서였다. 이렇게 벽안(碧眼)의 소록도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공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이들이 실천한 섬김의 정신을 기리고자 이들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추천위원회’를 발족했다. 동 위원회는 2019년 수상을 목표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어렵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마리안느는 대장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며, 마가렛은 치매 증세가 있다고 한다. 마리안느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마가렛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준다고 한다. 이들은 소록도 생활할 때 행복했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고 한다. 이제 우리 국민이 앞장서서 100만 인 서명운동에 동참해 평생 소록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며 사랑을 몸소 실천한 이들을 도와줄 때이다. 노벨평화상이야말로 이들의 발자취를 기리는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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