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초 원주시에 있는 노숙인 쉼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원주역 근처에 있는 그 쉼터는 이제까지 필자가 다녀본 사회복지시설 중 가장 열악했다. 1층은 공동생활 공간으로 주방과 식당 겸 거실이 있었다. 2층은 주거공간으로 4~5인용 방 몇 개와 세탁실, 화장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런 누추한 곳에서 엄동 한파에 오갈 데 없는 20여 명의 노숙인이 연명하고 있었다.

쉼터 센터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노숙인들의 인간성 회복과 사회복귀를 위해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쓰레기 재활용품 수거 등을 통해 어떻게든지 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시(詩) 낭독회와 시 전시회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해 그들의 인성과 자존감을 살려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소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들과 작별하고 나온 필자의 머릿속은 복잡했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필자가 노숙인을 가까이에서 대해본 것은 약 10년 전 고등학교 동창과 ‘노숙인 야간급식 봉사’를 통해서였다. 4월 초였지만 자정 경 서울지하철 역사(驛舍)를 감도는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우리 동문회에서 준비한 간편식을 을지로3가역과 을지로입구역 지하공간을 숙소로 삼고 있는 노숙인에게 나눠주는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필자도 노숙인은 술주정이나 하고 추태부리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필자가 노숙인을 보는 시각은 180도 바뀌었다.

그들과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두 시간 여 급식 봉사를 하면서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의 음주율은 결코 높지 않았다. 배식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질서의식은 비노숙인 못지않았다. 하루 종일 한 일로 피곤한 어떤 이는 식사도 하지 않고 종이 박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들은 어찌하다보니 거리로 내몰렸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건 빵보다는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걸 그날 밤 배우게 되었다.

최근 들어 몇몇 지자체가 노숙인 지원 대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빈틈없는 노숙인 관리를 통해 ‘노숙인 제로(zero)’에 도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욕구(needs) 파악→맞춤형 지원→사후 관리에 이르는 단계적 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사회복지서비스 및 무료응급의료 제도에 대한 안내로 노숙생활을 청산하는데 필요한 공공부조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갑자기 위기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도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할 때까지 도와줄 예정이다. 근로능력이 있는 노숙인에게는 지역 내 자활기관을 통해 직업훈련에서 취업까지 원스톱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원주시에서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도시농업을 통해 노숙인의 재기를 유도하는 이색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컨테이너에 농원을 만들어 재배한 농산물 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다. 노숙인에게는 일자리와 숙소가 동시에 해결되는 구조로 미국 보스턴에서 성공한 사례도 있다 한다. 사업비는 지역 내 공기업 및 향토기업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원주 혁신도시로 이전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미 이 프로젝트에 참여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제 노숙인 대책도 생선을 주기보다는 물고기 낚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혁신적 사고(思考)가 필요하다. 공공보다는 민간의 힘으로, 중앙보다는 지역에서, 나 홀로보다는 협력의 힘(collective impact)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에 더하여, 자생(自生)을 넘어 상생(相生)과 공생(共生)하려 할 때 누구나 행복한 복지사회 구현은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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