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개념은 그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기본적으로 무기력의 사전적 내용을 보면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무력감(helplessness)은 정신 분석학 용어로 어떤 일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느낌을 포함한 상태다. 다른 말로 무조감이라고 하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더 도울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의욕이 아예 없는 상태는 ‘avolition(저하)’로 ‘volition(의지)’의 단어에 부정을 나타내는 ‘a’가 붙어 의욕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무기력을 자발적,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으로 현저하게 의욕이 결여되었거나 저하된 경향을 나타낸다. 무력감이 반복되면 무기력해진다.

 

무기력 상태가 지속되면 사고 체계에 혼란이 온다

무기력의 증상으로 초기에 보여 지는 것이 바로 ‘탈진’이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만사가 귀찮아져 ‘방전된 배터리’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중했다가 어느 시점에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지거나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무기력은 어떤 지속된 반응의 결과로 볼 수도 있기에 단지 능력이 없거나 게을러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른 문제이다.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면 기억력과 언어 능력이 감퇴되는데 이는 내면의 동요와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된다. 스트레스에 빠지면 자기 일에서 점점 더 멀어지거나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이를 ‘무의식적인 무기력’이라고 하며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기에 서서히 무기력해진다. 아주 강력한 폭풍이 마을을 휩쓸었을 때 잘 대처하는 사람들도 하루 정도 지난 후에 혼수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이는 충격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야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재앙 징후(disaster syndrome)’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가공할 만한 참변에 노출되었을 때 심리적 충격으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통제 불가능에 의해 발생한 무기력’이라고 말하며 제약이 이미 사라졌는데도 그 제약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단순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고 인지할 때 무기력해진다.

 

삶을 갉아먹어버리는 무기력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사회 심리학자 로터는 “상황이나 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쉽게 무기력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믿으면 무기력에 빠진다.”고 말했다. 현재 내가 처한 환경에서 삶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의미와 목적을 결정할 수 있다. 자신과 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지만 그렇지 못하면 무기력이 학습될 수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베르벨 바르데츠키가 쓴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라는 책에는 엄마와 헤어져서 서커스단에 끌려온 아기 코끼리 룸바가 등장한다. 룸바는 사슬에 묶인 채 작은 나무말뚝에 묶여 있지만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쇠말뚝이었고 아기였던 룸바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며 도망가려고 노력했지만 갈수가 없었다. 룸바가 성장함에 따라 더 굵은 쇠말뚝으로 교체되었다. 룸바는 또 다시 사력을 다해 발버둥을 치면서 도망가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룸바는 ‘나도 노력해 봤어, 그런데 도망갈 수가 없어. 내 발목에 사슬이 묶여 말뚝에 매달려 있는 이상 난 도망 갈수가 없어’라고 체념한 듯 결국 도망가는 것을 포기 한다. 그렇게 포기할 즈음에 쇠말뚝을 작은 나무 말뚝으로 교체를 한다. 성장한 룸바는 얼마든지 나무 말뚝에서 도망을 갈수가 있지만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룸바는 ‘나도 해봤어. 그런데 안 돼’하고는 과거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미리 자신의 삶을 포기해 버린다. 이는 인간이나 동물이 반복되는 부정적인 사건을 겪고, 미리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갖게 되는 무력감이다. 1975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마틴 샐리그만은 이것을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 말했다. 혹독한 환경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낸다면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앞서 룸바처럼 무력감이 지속적으로 학습되어 삶을 포기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 수 있다.”고 기록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 처음에는 좌절감과 무기력을 경험했지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다. 인간은 어느 상황에 처해 있던 스스로 의미를 찾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어차피 해도 안 되니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면 일단 그 무의식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무기력에 머물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을 믿고 의미를 찾아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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