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금전복장

 

중국. 그리고 섬유 산업, 황금용의 날갯짓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중국 연대 금전복장 원학희 대표 -

 

연대에 온 지 오래 되었다는 금전복장 원학희 대표, 이에 언제 이곳에 오셨느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94년도 즈음에 왔노라고 털어놓았다. 처음에 한국에서 하던 일은 섬유 공장이었다. 당시는 섬유, 봉제 쪽 산업들이 인건비가 비싼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막 진출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바로 그 초창기에 원 대표는 관리자의 일원으로 처음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중국 현지 하청공장들도 여럿이었으며 하루 종일 밀려드는 오더를 처리하느라 정말 ‘쉴 새 없이’ 일했던 때였다. 그러다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원학희 대표는 직접 이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바야흐로 금전복장의 시작이었다.

 

결국 사람으로 하는 사업, 인간관계가 중요

 

사업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이에 관해 원학희 대표는 도처에 어려운 일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부연했다. 게다가 중국에 온 지 15년이 지났을 즈음, 역시 점점 상승하는 중국의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들이 숱하게 이곳을 떠났다고 전했다. “대부분 동남아 등지로 많이 나갔습니다.” 원 대표의 말이었다. “남아 있는 공장은 중국 기업이 대부분입니다. 한국 기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옛날에는 한국 기업이 참 많았다는 것이다.

섬유 공장을 하는, 그리고 거래처가 될 수 있는 기업들이 상당했다는 것. 그러나 여러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대부분 줄도산을 하거나 살 길을 찾아 동남아 등지로 이전, 현재 이곳에 남은 대부분의 공장은 중국 기업의 소유라고 원학희 대표는 말했다.

 

그 역시 자체 공장의 라인을 축소하고 대부분 아웃소싱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모두 비용을 가장 최대한 효율적으로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원학희 대표가 이끄는 금전복장은 현재 무탈하게 순항하고 있다. 사오십 명의 임직원들과 함께 3백만 불 가까이 연매출을 올리고 있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금전복장의 작업방식은 과연 어떠할까? 이에 관해 기자가 묻자 원 대표는 원자재와 부자재를 모두 수급해서 OEM 방식으로 작업하며, 이를 통해 한국, 미주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특이사항은 직원 대부분이 사오십 대 주부 숙련공으로, 최근 인력을 구하기 힘든 어려움을 금전복장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륙에서도 데려오고, 여하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맞이한 이 훈풍은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파이가 많이 줄었어도 그것을 나눠 먹을 수 있는 경쟁 기업들 역시 같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타지에 나와 경영하는 사업가들이 통상적으로 겪기 쉬운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대한 원학희 대표의 대처는 어떠할까. 이에 관해 기자가 묻자 그는 “직접 지시를 내리지 않고, 중간관리자 조직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시를 내립니다.” 이를테면 일선에서 작업하는 여공들과 언어와 사회·문화적 배경이 유사한 중간관리자를 한 번 거쳐 지시를 내림으로서 트러블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중간관리자와 매주 회의를 열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변혁의 시대, 희망을 품고 달리는 기업 

 

중국, 참으로 많이 발전했다. 그렇기에 더욱 급속도록 시장과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노라고 금전복장 원학희 대표는 말했다. 특히 연태와 청도 등지를 둘러싼 이 몇몇 해안 도시들의 경우 그 생활수준이 급성장하면서 중국 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고. 그 때문에 이곳 연대에 모여 있던 공장들의 업종도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가령 대기 오염의 온상이라는 좋지 못한 인식이 있는 제조업의 경우 계속해서 내륙으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원 대표의 말에 따르면 섬유는 결코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직종이다. 단지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생산부서는 아웃소싱으로, 기획부서는 기업의 핵심에 남는 형태로 진행될 뿐이다. 이러한 변혁의 시대를 맞아 원학희 대표 역시 생산 라인을 중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내륙 지역으로 옮기려고 계획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뢰의 구도’를 형성하는 게 참 어려웠다는 것. “그곳에 연고가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중간에 납기나 그런 부분을 체크하지 않으면 일이 순탄치가 못한 단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간혹 내륙 진출을 시도했다 실패해서 리턴하는 케이스도 흔하게 봤다는 것이 원 대표의 입장이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보다 더 좋은 내년을 맞이하는 것. 이에 관해 분위기는 ‘무르익었다’며 원학희 대표는 당차게 말했다. 침체 국면이 이제 종식되고 재차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래서 계속 이곳 연태 시에 남아서 5년이건 10년이건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원학희 대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그의 힘찬 날갯짓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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