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김종환 상공회장

연대상공회장, 연대삼해망구유한공사 동사장, 연대삼해실업유한공사 동사장 김종환 회장

 

 

⌜그물망⌟ 사업가에서 연대상공회장으로

탁월한 ⌜그물망 리더십⌟ 발휘

 

「삼해실업유한공사」, 「삼해망구유한공사」라는 네트제조(건축 안전망, 스포츠망) 회사를 운영하며 중국 진출 25년을 맞이한 김종환 회장은 노동집약적 사업이 중국을 떠나고 있는 한파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12대 연대상공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협력도 배워야 할 기술이자 가치 사슬이라며 ⌜그물망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그는 이제 중국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같은 끈을 가진 사람의 수와 가치의 양으로 연대하며 어려움을 막아내자고 갈파하며 13대 연대한인상공회회장 연임을 맞이하는 김종환 회장을 만나 전화위복의 새해를 향한 각오를 들어 보았다.

 

Q1.연태는 어떤 도시이며, 이곳 한인사회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A1. 연태는 중국 산동성의 중소 도시로 650만 명의 중국인구가 거주한다. 중국의 살기 좋은 5대 도시 중 하나이며 산수가 화려하고 어염시수(魚鹽柴水)가 풍부한 도시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영토였으며, 노나라의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라 매우 보수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만 오천 여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천여 개의 한국 기업이 주둔해 있다.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 또한 매우 보수적 성향이 짙은 편이다.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준수하고 지키려는 개념이 강하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한 신뢰와 사랑으로 이룬 그물망처럼 촘촘한 단합의 기운이 어떤 어려움도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우리는 지키고 있다.

 

Q2.연대한국학교가 교민의 자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학교 설립배경은?

A2. 연대한국학교는 2001년 3월 5일 설립되었으며, 산동성에서 유일하게 중국과 한국의 승인허가를 받은 초·중·고등과정의 학교로 한중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연태는 한국 기업체가 많이 진출한 곳이기 때문에 애국심 고취와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던바 여러 기업인들과 교민이 하나가 되어 푼돈을 모으는 등 주도적으로 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민족 정체성을 갖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학교 설립에 올인하셨던 분들은 사업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학교 설립에 성공적 결과를 이루어 냈다. 지금까지 17회에 걸쳐 2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우리 학생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연대한국학교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Q3.다른 지역과 다른 연대한인상공회만의 활약이나 특성이 있는가?

A3. 연대에는 LG 전자, LG 이노텍, LG 디스플레이, 현대, 삼림, 파트론전자, 동양기전, 희성전자, 두산 인프라코어, 두산기상, 대우조선 등 대기업의 진출 규모가 크다보니 많은 협력업체가 주둔하고 있다. 1000여개의 기업 중 한인상공회 가입회원은 300여개 쯤 되며 ‘연대한인상공회’라는 명함의 무게만큼 우리 한인상공회는 연륜과 위상이 매우 드높다. 우리 한인상공회의 특징은 교민들 간의 지역색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 동아리 및, 지방 향우회가 없는 곳은 연대 뿐일 것이다. 워낙 협력이 잘 되다보니 중국인들에게 보이는 우리의 이미지도 좋은 모양이다. 일본, 대만, 독일 등의 기업이 진출해 있지만, 지금까지 중국 시정부에서는 한인상공회원들에게 유난히 우호적이었으며 의존도도 높았다. FTA체결 후 한중산업원이 형성되었고, 이번 문재인 대통령 방문 후 옌타이 정부에서도 한국기업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사드로 다소 고조된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었지만, 30여 년간 다져온 서로간의 신뢰와 우정이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회복될 것이라 믿는다.

 

Q4.한인상공회장은 언제 취임했나?

A4. 나는 회장 임기 전, 6년 동안 수석 부회장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회장은 2년 임기로 2년 전 선출됐다. 그런데 회원들의 추대와 부회장님들의 도움으로 연임을 하게 됐다. 우리 연대한인상공회는 이권다툼이나 지역색이 없어서 활동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Q5.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한지는 얼마나 됐으며 진출 동기는 무엇이었나?

A5. 중국에는 92년 부산에 있는 본사의 주재원으로 왔다. 당시 수교 원년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중국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본사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중국에서의 사업은 성공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나는 곧 95년 독립을 하여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연합군에서 독립군으로 분리되어 나오는 과정에 많은 시련과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당시에는 봉제회사, 완구 제조회사 등 노동집약적 사업이 많았다. 나 역시 노동집약적 사업인「삼해실업유한공사,「삼해망구유한공사」라는 네트제조(건축 안전망, 스포츠망) 회사로 초창기 기회의 땅이 안겨 준 수혜를 톡톡히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100% 한국수출목적으로 어망사업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90%가 일본으로 수출을 하고 있으며 10%만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25년 간 현지화에 자리매김했으나 예전에 비해 어려운 점들이 많아진 현실이다. 중국의 임금이 오르다 보니 많은 노동집약적 사업들이 이미 인건비가 낮은 베트남 등지의 나라로 이동을 했고, 아울러 중국 정부의 혜택이나 우대가 점점 줄고 있으며, 이제는 고성능의 기계를 값싸게 구입할 수 있어 중국 현지인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악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지레 의기소침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나는 중국에 진출해 최고의 적기를 맞이했으며 아직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어려운 현실에 맞서기 위해 남은 기업들은 디테일을 살리고,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 경쟁해 나가야 할 것이다. 봉제회사, 완구회사 등 중국에서 한인사회의 기반을 다진 건, 노동집약적 산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이 쌓은 금자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악조건 속이지만 희망의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Q6.임금이 높아졌는데, 직원채용에 어려움은 없는가?

A6. 예전에는 현지인들이 한국 기업에 취업을 하려면 인맥과 빽을 동원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됐다. 인구감소 정책으로 한 자녀만 낳다 보니 요즘 중국의 젊은이들도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 게다가 직원을 채용하려면 5대 보험을 들어 줘야 한다. 신축 아파트 원주민 분양 혜택으로 예전에는 쪽방에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두서너 채의 아파트를 소유한 임대업자가 되었다. 자가용 타고 회사 다니는 직원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인간미가 넘쳐 난다. ‘기업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오너가 약속만 잘 지키면 충성을 다한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20년 장기 근속자들로 오너가 약속과 도덕성만 잘 지키면 얼마든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Q7.사드로 인한 한인사회의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A7.사드가 중국인들의 화장실까지 엿본다는 언론의 보도로 60대 중국 할아버지들까지도 한국 사람이라면 고개를 돌린다. 예전에는 한국 물건을 최고로 여겼던 중국인들이 고개를 돌리니 지금은 포장에 써진 한국 글씨들을 전부 한문으로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화장품과 식품 등 한국 물건을 수입해서 파는 한국관의 소상인들의 매출은 90%가 줄었다. 중국 은행 거래의 규제강화로 대출이 어려워졌으며 한국은행들은 한국에 본사가 있는 기업에만 대출을 해 주니 어려워 진 것은 사실이다. 사드로 소나기를 맞은 기업도 있고, 아닌 기업도 있지만 대체로 한인이라면 누구나 사드의 노크 소리를 듣고 있다. 정치적인 결정이 80만 해외 거주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Q8.한국정부에 바라는 점은?

A8.양국 정부가 도울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민들끼리 단합하여 궁리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토지 임대 및 비자 문제에 관한한 한국 정부에 섭섭함과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 자본을 투자해 50년 동안 중국의 토지를 임대해 쓰고 있는 한인들은 50년 후면 반환을 해야 하며 매년 마다 오르는 토지세에 허덕대고 있다. 한국정부가 수수방관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민들을 볼 때마다 과연 중국통인 공무원들은 얼마나 있는지 의심이 간다. 또한 중국에서 사업체를 일구며 총경리로 자리매김을 했더라도 총경리는 60세, 동사장은 65세부터 거류비자가 나오지 않는 납득이 안 가는 불합리한 상황을 한국 정부가 나서서 방법을 간구해 주길 당부하는 바이다.

 

Q9.한인 기업의 시급한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A9.사드로 인한 위기를 잘 넘기고 외연으로는 중국과의 관계완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내적으로는 한인들끼리 똘똘 뭉쳐야 할 것이다. 연대한인상공회의 전통은 단합이다. 한인들끼리 힘을 합쳐 중국과 연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중국에 대한 적대시한 감정을 가지고 독불장군처럼 사업한 사람들은 전부 패망했다. 타지에서 성공을 하려면 25%는 실력이지만, 75%로는 단합으로 이루어야 한다. 항상 시련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Q10.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조언은?

A10.2000년 초까지만 해도 중국은 경제발전이 한국에 못 미치는 나라였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이나 경제발전, 문화는 이제 전 세계를 능가한다. 아직도 중국을 후진국으로 보고 만만하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중국에는 이미 전세계 브랜드들이 진출해 있고, 해외 관광족들과 유학파들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안목이 크게 높아졌다. 만약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면 2, 3년 동안 중국 문화만 익혀라. 300원 짜리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시장문화부터 배워라. 밑바닥에서 중국어를 배운 다음에 사업 투자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물건이라고 중국에서도 잘 팔린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실패를 한 많은 기업들이 지닌 원인 중 하나가 한류열풍만 믿고 중국인들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뜻을 펼치기를 바란다. 아버님이 공무원이셨기에 부모님으로부터 사업자금을 기대할 수 없었던 나는 87년, 대만으로 건너가 공부를 한 후 92년 중국에 전공과는 전혀 다른 아이템으로 승부를 걸어 자리를 잡았다. 무일푼 젊은 나이에 큰 세계를 향한 도전을 불사한 결과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Q11.연대한인상공회가 주최하는 행사 및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A11.한인들이 단합할 수 있는 체육대회를 한국학교 운동장에서 해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연말이면 송년의 밤을 연다. 지난 16일에도 옌타이시 힐튼호텔에서 연대한인상공회 창립 23주년의 축하의미가 담긴 ‘2017년 옌타이 한인 송년의 밤’을 개최했다. 예전에는 많은 비용을 들여 한국에서 연예인을 초빙하는 등 호화로움에 초점을 맞췄으나 이제는 한인기업인, 교민, 유학생 500여 명이 참여한 큰 무대를 한국 어린이들을 비롯 한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들이 가진 끼와 재능을 발휘하며 모두가 즐거운 한인의 밤을 개최하고 있다. 영재를 키우는 일에 뜻을 모으고 있는 우리 한인상공회는 큰 무대에 섰던 아이들이 이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며 자부심을 갖게 되길 희망한다. 아울러 업체들이 자회사의 물건들의 기부는 나눔 행사를 하는 등 한인들이 모여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연대가 한국의 또 다른 도시라 생각한다. 자국민끼리 협업으로 이루어낸 많은 업적들이 길이 빛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서도 우리의 땀 냄새와 열정의 온도에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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