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하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더위팔기’이다. 열나흗날 저녁 어머니는 나와 동생들에게‘더위팔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보름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는 동네사람들이 부르는 소리에 절대 대답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이웃에 사는 친구가 찾아와서 밖에서 놀자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엉겁결에 ‘응’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더위, 네 더위’라는 말을 했다. 아차, 먼저 더위를 외쳤어야 하는 건데, 왠지 그날부터 이웃집 친구가 웬수가 되었다. 이런 풍속을 더위팔기(매서:賣暑)라고 했으며, 이렇게 우리는 정월대보름을 시작하곤 했다.

정월 대보름날,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마을엔 온통 놀이판이 벌어진다. 줄다리기, 달맞이, 농악 놀이, 새 노래 등 민속놀이와 풍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침내는 다함께 참여하는 대동놀이로 놀이판은 확장된다.

특히 아이들에겐 정월 보름날 저녁에 많이 하는 불놀이가 있었다. 망우리라 하여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논이나 둑 같은 곳에서 횃불을 돌린다. 불을 넣은 깡통을 돌리기도 한다. 불이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보름달 같아‘망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둥근 불 주위에 검은 그림자가 많이 생기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이웃동네 아이들과 들판에서 망우리를 돌리며,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 패싸움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 대보름날 뜨는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재수가 좋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에는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와 함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세시가 많았다. 농사의 풍흉은 그 해에 제대로 비가 오느냐 오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해 제대로 비가 올 것인지를 점치는 풍속이 많았다.

먼저 보름의 날씨를 통해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방법이 있었다. 정월 보름달의 색깔이 붉으면 그 해 날씨가 가물 징조이고, 희면 비가 많이 온다. 또 날씨가 흐리면 그 해의 농사가 풍년이고, 날씨가 좋으면 흉년이다.

겨울인 만큼 날씨가 춥고 흐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겨울에 날씨가 너무 따뜻하면 보리가 웃자라는 등 피해가 있었다. 또 꼭두새벽에 첫 닭이 울기를 기다려, 그 우는 횟수가 열 번 이상이면 가뭄이 든다고 믿었다.

또 보름날 아침밥을 할 때 쓰인 나무 숯을 마당에 두어서 그 숯이 하얗게 변하면 날씨가 가물고 시커멓게 변하면 비가 많이 온다고 점쳤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아침에 찰밥을 먹기 전에 보리, 나락, 콩 등을 태운 후 그 재를 밥에 묻혀 두었을 때 변하는 색깔을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하였다.

정월 보름에 벌이는 놀이판에서도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줄당기기를 해서 이긴 편은 풍년, 진편은 흉년이라든가, 동쪽이 이기면 풍년, 서쪽이 이기면 흉년 등 그 점치는 방법은 다양했다. 윷놀이, 동채싸움, 기싸움 등 놀이종목도 여러 가지였다.

이제 그와 같은 더위팔기, 불놀이, 점치기는 추억으로 존재한다. 그래도 대보름 먹을거리 풍습만은 여전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보름달만은 어김없이 떠올라 사람들에게 차오름의 만족과 비움의 겸허를 동시에 알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대보름이라는 명일(名日)은 오늘날 우리 농촌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해보는 달인 것이다.

2018년 무술년에도 도시와 농촌이 정월 대보름달의 의미를 되살려 하나가 되는 소망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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