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한국 일본 대만 민간사회복지기관 대표자 회의 참석차 오사카를 다녀왔다. 3개국이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국민의 행복 증진을 모색하기 위한 회의였다. 1996년부터 만나기 시작했으니 벌써 22년째 이러한 고민을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회의 주제는 ‘동북아시아의 빈곤과 사회복지의 역할’이었다.

첫날 저녁 환영 리셉션은 오사카 토후 귀족 저택에서 열렸다. 리셉션홀로 안내하기 전 먼저 일본식 정원을 한 바퀴 산책토록 한 게 인상적이었다. 리셉션 홀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초면이었지만 방금 막 감상한 정원을 화제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주최 측 일본 전국사회복지협의회는 행사 진행에 빈틈이 없었다. 각 테이블 별로 나라별 참가자를 안배했고 일본어와 중국어 통역도 배치해 대화하는 데 불편함이 없게 했다. 우리들은 공통분모인 ‘사회복지’를 소재로 마치 오랜 친구처럼 흉금 터놓고 얘기를 이어갔다.

다음날 회의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오사카 시내 선술집에서 평가회 겸 뒤풀이를 했다. 대화 도중 이번 대표단 단장인 한 교수로부터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접했다. “가슴으로 난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딸아이는 입양 사실을 모르고 있고 앞으로도 알리지 않을 겁니다. 여러 번 들킬 뻔 했습니다. 아빠 엄마 혈액형을 물어보기에 할 수 없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엄마 아빠 나이도 실제보다 훨씬 젊게 알고 있습니다.”

맞은편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전국 규모 아동시설 대표도 커밍아웃 하겠다며 입양 사실을 밝혔다. “태어난 날 입양했던 아이가 지금 28세 처녀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입양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갓 낳은 아이를 병원에서 데리고 올 때 안고 찍은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평소 만나기 힘든 미담을 우연한 기회에 그것도 두 편이나 들었다. 그들의 입양 동기와 양육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 이상이었다.

보건복지부에 근무할 때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해외입양이 금지되게 돼 있었다. 국제적으로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픈 궁여지책이었다. 당시 해마다 약 3000명의 아이가 버려지고 있었다. 그 중 국내입양으로 약 1000명이 구제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해외로 입양되었다. 해외입양이 안 되면 이 많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자라야 한다. 이는 큰 문제였다. 당시 서상목 복지부장관은 국내입양을 촉진하는 특례법을 개정토록 했다. 또 복지부 출입기자를 입양을 많이 한 선진국으로 보내 입양아들이 잘 성장하는 모습을 취재토록 해 국내 언론에 반영했다. 그 뒤로 해외입양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중앙입양원에 의하면 2016년 한 해만해도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거나 부모의 사망 이혼 등으로 인해 가정을 떠난 아이가 4500명이 넘었다. 이중 국내입양 546명(62%), 해외입양334명(38%) 등 고작 880명만이 입양되었다. 입양률이 채 20%도 안 된다. 2008년부터 2011년 간 국내외 입양아동수는 매년 2500명 선이었다. 그러던 게 2012년 1880명으로 급감하더니 2013년부터는 급기야 1000명을 밑돌고 있다.

변환점이었던 2012년은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해이다. 입양아가 성장 후에라도 친부모를 찾기 쉽도록 출생신고 된 아이라야만 입양을 의뢰할 수 있게 했다. 또 양부모가 될 요건을 강화해 입양아동 학대를 막자는 게 법 개정 취지이다. 취지는 좋지만 미혼모들의 기피로 입양이 큰 폭으로 감소되었다. 그 결과 2016년 말 현재 1만3600명이 넘는 아동이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입양은 아이에게 사랑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입양이 최선은 아니지만 시설에서 양육되는 것보다는 바람직하다. 입양 활성화를 위한 발상의 전환과 중지를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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