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민건설

보민건설 심재호 대표

올해 1억 불 매출 달성, 신용등급 트리플 A(AAA)

100% 한국제품 공급 베트남 최초 건축자재 전문 MALL 시행

 

보민건설은 베트남에서 더 잘 알려진 기업이다. 심재호 대표는 벼랑 끝에서 신대륙을 찾아 나선 콜롬버스처럼 맨손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성공한 인물이다. 그냥 앉아서 죽을 것인가, 마지막 용트림이라도 해보고 죽을 것인가...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점, 그는 해외로 튕겨져 나가다시피 했다. 한국에서 시장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나라 밖 비행기에 몸을 싣지만, 성공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 해외 시장에서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며 이룬 성공이기에 더욱 값지고 아름답다는 보민건설의 심재호 대표를 만나 성공 노하우를 들어 보았다.

 

대학에서 토목 전공, 건설만 33년

지금 베트남에서는 건설의 훈풍이 불고 있다. 한국보다 경기가 좋다보니 진출한 건설회사가 한국의 메이저급을 포함 300여개나 된다. 그 가운데 보민건설의 설립도 7년째를 맞이했다. 심대표가 베트남에 진출한 것은 올해로 딱 7년째이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는 그는 건설만 33년을 해 온 전문가이다. 25세부터 건설업에 뛰어 든 그에게 많은 오더가 쏟아져 내렸다.

“해외공사 경험이 있으셨던 사촌형님과 함께 둘이 자본금 3백만 원 씩을 각출하여 ACE 건설을 설립하여 미 극동 공병단이 발주하는(FED) 캠프 스텐리 야전병원 공사를 시작으로 시공현장에 첫 발을 디뎠다. FED공사 같은 경우엔 제출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았다. 일보다 서류 작성에 몰두하며 사람이 점점 황폐해져 갔다. 100만 불, 200만 불 규모의 공사를 했을 때도 안전관리 및 시공, 품질에 관련된 서류만 작은 컨테이너 박스로 거의 하나가 될 때도 있었다. 이후 미군 야전병원, 장교 아파트, 종합 운동장 등 수 많은 공사를 수주하여 완공을 했다. 좋은 집과 좋은 차를 타고 다닐 만큼 많은 돈은 벌었지만, 건강이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돈이 뭔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돈이 벌리자 무조건 사람을 믿었고, 약속을 믿었다. 한 마디로 세상을 만만하게 보았던 것이다.”

 

베트남에서 귀한 인연 만나

FED 공사를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한 국내 건설공사에 생각지도 못했던 불운이 닥치자 그의 인생에 먹구름이 덮치기 시작했다. 건축주와 소유주가 다르다는 걸 모르고 진행했던 공사였는데, 결국 소유주가 준공 후 전매를 하고 잠수를 타 버린 것이다. 된통 당하고 난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니, 수중에 딱 천 만 원이 남았다. 성공의 가도를 달리다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지만, 그는 자포자기하지 않았다. 역경을 마주하자 자기 안의 숨은 힘이 솟아 오른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700만원을 건네며, 딱 석 달만 살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연고 하나 없는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가 베트남으로 갔던 것은 무거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더 놀라운 힘을 발휘하겠다는 각오를 세운 것이다. 실패를 했을 때는 가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찾는 용기도 ‘노력’일 수 있다고 심 대표는 전한다.

“무작정 베트남에 온 나는 단 한명의 선배를 알고 왔다. 베트남 천지에서 단 한명 이었다.

하지만 같이 성공해서 돌아가자던 그는 나와 생각이 너무 달랐기에 각자 다른 길을 가기로 하였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너무도 막막한 상황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새롭게 알게 된 지인이 부탁 하는 작은 공사에 동참을 했다. 제법 까다로운 공사였는데 3일에 500불의 일당을 받기로 하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측량도 하며 작업을 마쳐주었다. 일이 끝나고 이제 간다고 공장 법인장 에게 인사하자 공장의 법인장이 같이 밥을 먹자고 하더라. 이런 작은 일에 한국 사람이 직접 나와서 측량하고, 앙카 까지 현장 제작하여 설치하는 건 처음 봤다면서 믿고 공사하나를 부탁할 테니 회사부터 만들라면서 2만 불을 건넸다. 그가 건네준 2만 불 중 만 불로 시공도면을 그리고, 만 불로 회사를 만든 것이 지금의 보민건설이다. 그에게 법인 계좌를 보이면서 회사를 만들었다고 하니까 계약금으로 20만 불을 서류 한 장 없이 또 주더라. 남이 들으면 소설이냐고 묻겠지만 나에게 직접 일어난 일이다.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감동을 받았고, 나는 60만 불짜리 첫 공사를 책임지고 완성하였고 우수시공 감사패 까지 받았다. 그 일을 모태로 그 해 일 년 동안 200만 불의 공사를 수주 할 수 있었다. 한 달에 만 오천 키로 씩 공사수주를 위해 다니다 보니 이렇게 일을 하다가는 자기가 죽겠다면서 키를 놓고 도망을 간 운전기사도 있었다. 그 때 내게 귀인이었던 그 분은 당시 이사였는데 곧 상무로 진급을 했고, 지금은 그곳 현지 공장의 총책임자로 지금 나와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 베트남 3개,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 건설 회사를 설립

석유곤로와 양은 냄비에 밥을 해 먹고 살았을 정도로 많은 고생을 했던 심 대표는 베트남에서의 7년 동안 인생 고생을 다 한 것 같다고 말을 한다. 맨몸으로 와서 일군 회사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발품을 팔았고, 베트남 진출 후 3개월 동안 무려 체중이 9키로나 빠졌다. 거의 피골이 상접한 채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7년 동안의 고군분투 끝에 지금은 6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게 되었다. 한국은 물론 베트남에 3개,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 건설 회사를 설립한 보민건설은 HI-RISE 빌딩, 철강 및 방직공장, 각종 생산 공장 등의 건축공사와 항만, 도로, 교량 등 각종 토목과 건축분야에서 50여 개의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수행하였다. 올해의 수주 목표는 1억불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충분히 가능하다한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신용’ 지키며 해마다 두 배씩 성장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며 심 대표가 철칙으로 생각했던 건, ‘신용’이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만큼 신용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빚에 빚을 내서라도 신용만큼은 지켰고, 그것이 선순환이 되며 회사는 해마다 두 배씩 성장했다. 지금은 1년에 100여 건의 공사 문의가 오는데 3분의 1은 수주를 한다고.

보민건설은 베트남 5대 은행들로부터 신용평가 등급 트리플 에이(AAA)를 획득하였으며, 신용이 좋다 보니 그만큼 원가를 절감할 수가 있었다. 심 대표는 한 번도 부당한 공사비에 타협을 한 적이 없었으며 정확한 공기를 준수하여 완벽한 공사를 진행했다.

보민건설엔 한국인 소장급만 23명에 80여 명의 현지기사,20여명의 관리직이 근속 중이다. 건축 1급 자격증을 기본으로 대기업 간부, 기술사, 건축사 등 유능한 재원으로 구성된 한국인 소장들을 심 대표는 누구보다 믿고 신뢰한다. 그렇기에 단 하루도 급여일을 미루어 본 적이 없으며 그들의 안녕과 복지를 자신의 중대 과제로 생각한다.

보민건설은 현지 건설사중 최초로 15일 결제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한다. 현지 협력사들의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을 고려하여 힘들지만 이 시스템을 향후로도 바꿀 생각이 없다 한다.또한 대표의 권한으로 직원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소장들이 현장에서 결재를 올리면 단가검토만 직접 한다고. 좋은 직원들이 필드에서 뛰어 주기에 든든하다는 심 대표는 없던 인복이 베트남에 와서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보민건설은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대부분의 한국 메이저 건설사에 해외 우수업체로 등록이 된 건설회사이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대기업 급 인재들이 두로 포진 되어 있다. 지금은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고, 가정도 안정이 되었다. 대기업에 비해 급여는 조금 작지만, 그래도 베트남에 진출한 다른 업체에 비하면 꾀 높은 수준의 급여를 책정하고 있다. 자녀 장학금은 한국인 ,현지인 차별없이 고등학교까지 전액 지급하고, 대학은 50% 지급한다. 내 꿈은 베트남 1등 기업이 되어 직원들에게 삼성보다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것이다. 1등 기업이란 볼륨이 커서 1등이 아닌, 직원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에 1등인 기업을 말하는 것이다.”

 

회사의 사훈 ‘첫 발자국을 잊지 말자’

심 대표는 자신의 리더십과 팀원들의 기술을 조화시키는 법을 잘 알고 있다. 대부분 승리하는 팀을 보면 선수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에 적절한 보상을 해 준다. 선수들의 능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들의 가치에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선수가 아닌 관중으로 만드는 셈인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건 기업도 마찬가지라는 심 대표는 팀원들의 승승장구를 도우며 회사의 발전을 도모했다. 적어도 혼자 모든 권력을 쥐고 직원들의 사기를 꺾거나 직원들의 창의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잠재력을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팀원들에 대한 보상은 팀을 우승팀으로 만드는 최고의 묘약이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그는 스스로 에게도 늘 당부한다. 무일푼으로 와서 밥걱정 안 하고 살게 되었다고 교만하지 말고, 늘 ‘첫 발자국을 잊지 말자고

 

하노이 18,000 평에 한국 건축자제 공구물을 시행

보민건설은 하원 비나 JSC라는 계열사를 앞세워 하노이에 건축면적 만 65,000M2의 거대 건축자재 공구물을 시행한다. 한국의 청계천처럼 베트남에도 공구상가가 있지만, 체계적 이지 못하고 거의가 중국산인 점을 아쉽게 생각하던 터, 자신이 직접 나서서 품질 좋고 저렴한 한국 자재들을 맘껏 구해 쓸 수 있는 전용 공구몰을 만들기로 한 것. 이 대형 공구몰은 건축자재, 인테리어 자재, 각종 전동공구, 건설 장비 등을 유통과정 에서 생기는 2중,3중의 거품을 완전 배제하고 생산자가 직접 위탁 및 회원사 직영으로 판매 및 운영하게 하여 베트남 및 동남아에 진출하고자 하는 수출업체 와 현지 건설상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사업장의 위치는 하노이 중심에서 30분 거리에 있으며 하노이 국제공항에서는 15분 거리이다. 인근에 고속도로가 즐비하고, 주변 산업단지로는 삼성, 현대, LG, 기아 등 대기업 입주해 있어 향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또한 수많은 산업단지와 소매상, 개별 소비자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것과 국내에서 생산되는 어떠한 자재도 통합 물류시스템을 통한 현장 직구매와 원스톱 주문 및 배달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입점사를 위한 지원센터 및 은행, 현지 주재원을 위한 레지던스, 식당가등 모든 부대시설도 준비되어 있다. 2017년 11월 말까지 부지 매입을 완료할 계획이며 연말이내 지반공사를 시작하여 2018년 말 영업개시를 목표로 잡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삼성보다 많은 월급을 주겠다는 목표 세워

크리스천이면서 내조의 여왕인 아내를 존경한다는 심 대표는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자신의 진로를 찾아 갔고, 둘째 아들은 그의 뒤를 이어 한국에 있는 유통 회사를 맡고 있다. 지금 보민건설은 자체공사로 베트남 북 중부의 핵심 공업도시로 급성장중인 하띤시에 250세대규모의 저층아파트의 12월말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연이어 같은 부지에 1200세대의 고층 아파트 시행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하노이 종합 공구몰 등 대형 프로젝트 완성과 함께 사업이 안정되는 시점에 심 대표는 장학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능력은 있으나 여건상 학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한 젊은 공무원들을 정부로부터 추천 받아 하고 싶은 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그래서 이곳에서 버는 수익의 일부를 베트남에 환원하여 진짜 베트남 발전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인재를 키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현지인 노동자와 협력하는 문제에 대해 그의 견해는 일반적인 생각과 조금 다르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것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가 그들의 문화와 관습의 다름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거기에 대해 걸 맞는 대우를 한다면 한국사람 못지않은 총명함과 손재주를 가진 그들이기에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잘 할 수 있다고.

팀워크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그는 직원들에게 첫 발자국을 잃지 말고, 변하지 말자고 전한다. 적어도 자식들에게 ‘보민건설’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일군 회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고. 삼성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심 대표는 말만 가족이 아닌 진심으로 직원을 사랑하고 아끼는 오너였다.

2020년.

보민건설 창립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건설업 역시 고객만족이 최우선인 “서비스업”이라 주장하는 그가 3년 후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 기대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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