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가난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헌신

감곡매괴성당이 '한국의 루르드'라 불리기에 '루르드'가 뭔가 찾아 봤다. 성모 발현의 기적이 일어났던 프랑스의 성지다. 그러니까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은 성모 발현과 관련된 성당이란 이야기가 된다. 여행자가 비록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역사 유적지를 대하는 마음으로 이곳 성당을 둘러보았다.

 

성당 내부에 있는 성모상은 실제 루르드에서 제작되어 이곳 성당 1930년 제대 중앙에 안치되었다. 한국 전쟁 때 성당이 인민군 사령부로 사용되는 동안 인민군이 여러가지 기이한 일을 겪자 그 원인이 성모상이라 생각하고 총을 쏘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총알이 성모상을 피해갔을 뿐 아니라 억지로 성모상을 내리려 하자 성모상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도 7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1897년 설립되어 오랜 역사 이곳에 자리잡고 있던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의 한편에 자리잡은 박물관에는 이 성당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관람객들에게 선보여지고 있다. 원래 이 성당이 있던 자리에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오기도 했다고 한다.

 

 

입구 쪽에 자리잡은 성지사무실 건물인데 가운데 정원을 둘고 사면을 둘러싼 회랑 때문에 상당히 이국적인 분위기가 났다. 햇볕이 비쳐들어 더 풍경이 다채로웠다.

 

이 분이 바로 이 감곡매뫼성모순례지성당이 있게 한 분이다. 감곡매괴성당의 초대 본당신부였던 임 가밀로 신부님 동상인데 지금도 이렇게 동네와 성당 마당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주고 계신다.

 

 

성모 성당이란 사실보다 나는 '임 가밀로 신부님'의 삶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 받자마자 한국으로 오셔서 평생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이곳에 묻히셨다고 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식민지 지배에 전쟁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된 가난한 나라에 어떻게 평생을 헌신할 생각을 하셨을지.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목회자라면, 신학자라면, 이런 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분홍 장미는 '매괴 장미'라는 푯말이 있었는데, 매괴장미는 이곳에만 있는 품종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장미의 한자음이 매괴라고 한다. 묵주 기도를 의미하는 '로사리오(Rosario)'를 중국식으로 번역한 한자어가 '매괴'다.

 

성당 뒤쪽 야트막한 산에 순례 코스 겸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나무 가지 사이로 은은하게 햇살이 비쳐 들어 산책하는 내내 평온한 기분이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산상 십자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요한과 마리아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성모 광장'은 일제강점기 역사 한 토막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곳에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자 공사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기상이변이 나타났다고 한다. 결국 더 이상 공사는 진행되지 못했고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물러가게 되었다고 한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 비취는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은 정말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역사적인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지만 정말 감동적이었던 건 임 가밀로 신부님의 신앙과 삶. '만나기 전부터 당신을 사랑했다'는 그의 고백에 왠지 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춥고 가난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헌신해 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