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카페(Cafe)는 본디 ‘커피’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후에 발전하여 커피나 술, 또는 가벼운 음식 따위를 파는 음식점을 말한다. 사전에 나오는 설명에 의하면, 간이식당 또는 술도 나오는 작은 요리점이다. 영국에서는 캐프를 말하는데 식사는 팔지만 술은 팔지 않는다.

이와 대비되는 미국에서의 속어로 Greasy Spoon이 있다. 지저분하고 불결한 대중식당을 지칭한다. 캐프(Caff)는 영국의 속어로 스낵, 간이식당 또는 다방이다. 카페테리아(Cafeteria)는 셀프서비스 형식의 식당으로 대학이나 공장 등에 많다. 아메리카스페인어에서, Cafe커피 + Teria 가게의 조어로 알려져 있다.

카페인(Caffeino;C₈H₁₀N₄O₂)은 커피·홍차·코코아 등에 함유되어 있는 알칼로이드(Alkalod;식물염기)이다. 천식치료용 테오필린(Theophylline)이나 테오브로민(Theobromine)과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견사(絹絲)모양이며 광택이 있는 침상(針狀)결정이다. 물에는 잘 녹지 않으나, 뜨거운 물에는 상당히 빠르게 쉽게 녹는다.

약효로는, 첫째 중추 흥분 작용이다. 대뇌피질에 작용하여 정신기능을 흥분시킨다. 인체에는 1회에 150㎎ 정도에서 효과가 생긴다. 연상(聯想)이 활발해지고 새로운 생각이 잘 떠오르는 일도 많으나, 반면에 한 가지 일을 충분히 집중해서 생각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피로감이 없어지고 감각이 예민해지며, 운동기능도 활발해 진다. 진통제에 배합하면, 그 효력을 증대시킨다고 한다.

둘째 강심(强心)작용을 한다. 일종의 강심제(强心劑)로 심근(心筋)에 직접 작용하여 그 수축력을 높인다. 셋째 이뇨(利尿)작용을 한다. 오줌을 잘 나오게 해서 오줌량이 증대한다. 음료로서 보통의 커피는 1㎖당 카페인 1㎎을 함유하므로, 1회에 100~200㎎을 마시는 것으로 중추 흥분 효과가 충분히 나타난다. 그러나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부작용으로 위장 장애가 있다.

우리말로 같은 표기와 발음의 카페 왕조(Capet王朝;987~1328)가 있었다. 중세 프랑스의 왕조인데, 창시자 위그 카페부터 샤를 4세까지 14대에 걸친 왕조였다. 지금의 파리를 수도로 해서 프랑스 왕을 칭했다. 카롤링 왕조의 멸망 후 유력한 귀족에 추대되어 성립되었다. 초기에는 국제(國制:나라의 제도)의 해체에 의해 왕권은 나약(懦弱)하여 정신적 권위에 불과했으며 지배영역도 기껏해야 파리 주변에 한정되어 있었다.

역대 왕은 직계남자에 의한 왕위의 세습제, 영지의 확대, 교권이나 도시와의 제휴에 의해 실력을 쌓아 봉건적 주종관계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제후를 눌렀다. 필립 2세에 의한 영국령의 탈환과 루이 9세의 왕령확대로 집권화가 두드러지게 진전되어 14세기 초기 필립 4세 때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통일국가로서의 면모와 체제가 갖추어졌다. 종말에 가서는 다음의 루이 10세 때 봉건제후가 세력을 회복했고 샤를 4세 뒤에 남계혈족(男系血族)이 단절되어 방계(傍系)의 발르와 왕조가 성립되었다.

요즈음 서울 거리에 어디를 가도 카페테리아를 만날 수 있다. 바쁜 현대인에게 상당히 편리한 곳이다. 손님 자신이 요리를 날라다 먹는 신속한 시스템, 일종의 경식당(輕食堂)인데 셀프서비스 요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건비와 시간을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인기가 있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이 현상도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서구에서도 카페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꾸준히 변모해 왔다. 일반적으로 다방(茶房)이라고 번역해 왔으나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후 특히 6·25사변 후 지금까지 많은 변모를 해왔다. 프랑스어로 커피를 카페라 하는데, 이것이 커피를 파는 집이란 뜻으로 변한 것이란 것도 이미 설명하였다. 파리에서는 17~18세기경에는 문인이나 정객들의 사교장이었고, 미국에서는 점차 술집(bar-room)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북아프리카 모나코의 대서양으로 면한 국제적 항구도시이다. 1906년 프랑스가 점령한 이래 급속히 근대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모로코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아라비아어로는 ‘다르 엘베이다’라 하며 스페인어 카사블랑카와 함께 <하얀 집>이라는 뜻으로, 지금도 시내에는 하얀 벽의 집, 백색 빌딩이 많다. 유명한 <카사블랑카 회의>(1943년 1월)의 개최지이기도 한다.

미국의 영화배우, 하드 보일드(Hard-Boiled)역의 제일인자로 널리 알려진 보가트(Humphrey Bogart;1899~1957)는 잉그릿 버그만과 같이《카사블랑카》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주연 작품으로《몰타섬의 매》가 있고《아프리카의 여왕》으로 1952년에 아카데미 주연 남우상을 수상하였다.

지금까지도 세계인들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카사블랑카》는 비록 멜로물이지만 20세기에 제작된 세계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보가트는 영화 중에 카사블랑카에서 술집을 운영했는데 간판은 ‘Rick’s Cafe Americain(릭의 미국식 술집)’ 이었다.

2층 건물인데 2층에는 사장실과 접견실이 있고 넓은 1층에는 수십 명의 종업원이 있다. 커피, 각종 음료수와 주류, 식사를 제공하고 밴드, 피아니스트, 무희가 있고 상당히 넓은 카지노도 있었다. 벌써 예전 1941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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