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일, 대한민국이 낳은 한 불세출의 스포츠 스타가 은퇴했다. 프로야구 선수로 뛴 23년 동안 1906경기에서 2156개 안타로 통산 타율 0.302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넘긴 홈런만 467개, 일본에서까지 합하면 무려 624개 홈런을 쳤다. 1498타점, 1355득점, 4077루타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사상 개인통산 최다 기록이다. 이에 더해, 최다 홈런왕 5회, 최다 정규시즌 MVP 5회, 최다 골든 글러브 수상 10회, 38세에 최고령 타율 3할, 30홈런, 100타점과 39세에 최고령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러한 그의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구 결번된 등번호 36과 함께 전설이 된 이승엽 선수 얘기다.

그의 성공 비결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성실함이다. 그는 공부 대신 좋아하는 야구를 택했다. 그가 일곱 살 때였던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겼다. 그는 당시 OB베어스 좌완 에이스 박철순 투수를 보면서 그와 같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 나이에 야구를 시키지 않으려는 아버지에게 ‘단식 투쟁’으로 버텼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두 손 들었다. 어렵사리 쟁취한 기회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남보다 더 많이 흘린 땀의 대가로 중고교 시절 좌완 투수로 명성을 날렸다. 대학과 프로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서도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프로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어렸을 때 꿈이 이뤄진 것이다.

그가 대한민국 ‘국민타자’로 추앙 받는 데에는 비단 야구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의 성실함과 훌륭한 인품이 근저에 깔려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다른 선수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는 유명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무거움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애써 부인하고 있는 바로 공인(公人)의 자세다. 그러기에 그는 유명인에 따라 다니는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이 ‘공직’을 마칠 수 있었다. 그의 좌우명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이다. 그는 야구선수로서의 타고난 재질과 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두루 갖췄다.

삼성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렸던 이승엽 선수 은퇴식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를 지켜본 많은 어린이에게 나도 뭐든지 잘 하면 남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제 우리도 ‘영웅 만드는 사회’로 진화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건국 250년도 채 안 된 미국에는 우리 머릿속에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많은 영웅이 있다. 미국과 인류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에게는 성별과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추앙한 결과다.

반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외에 이렇다 할 영웅이 없다. 학교 운동장에서 이 두 분 외 동상을 만나기는 드문 일이다. 영웅을 만들기는커녕 우리는 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을 어떻게든 떨어뜨리려 한다. 이제 이래서는 안 된다. 큰 인재는 나라의 동량(棟樑)으로 잘 키워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큰 톱니바퀴만으로는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다. 작은 톱니바퀴 역할도 있는 것이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그릇에 맞는 일을 찾아 즐겁게 사는 게 행복한 인생이고 성공한 인생이다.

앞으로 더 이상 ‘야구선수 이승엽’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승엽 재단’을 만들어 대한민국 야구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졸업이 시작을 의미하듯, 은퇴는 곧 인생 2막을 뜻한다. 이제 그의 나이 불과 41세다. 보통 사람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젊은 나이에 현직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이제까지 산 날보다 더 많게 될지 모른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 한 가지 더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비단 야구계뿐만 아니라 가급적 우리사회 여러 분야에 공헌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영웅 이승엽’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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