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친구들과 후지산(富士山, 해발 3776m) 등정길에 나섰다. 후지산은 7월 1일 개산(開山) 해 9월말까지 석 달 동안만 일반에게 등산이 허용된다. 우리는 후지산을 오르는 다섯 개 등산로 중 가장 대중적인 요시다(吉田) 루트를 택했다. 5합목(2300m)에서 정상까지 해발고도로는 약 1500m, 등산로로는 7km 올라가야한다.

어스름한 오후 7시, 관광객에서 등산객으로 변신한 우리 일행은 5합목을 출발했다. 이 밤에도 후지산을 오르는 행렬은 앞뒤로 끝이 안 보인다. 경사가 심한 등산로는 지그재그(zigzag)식으로 되어 있었다. 크고 작은 용암이 널브러져 있는 등산로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딛지 않으면 자칫 발을 삘 정도였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우아한 후지산-만년설과 벚꽃이 함께 어우러진 호수가 있고, 정상 분화구를 중심으로 원추형의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 산-의 이미지가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안 걸렸다.

7합목(2700m)부터는 크고 작은 산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각 산장에는 2층 구조 침실, 식당, 매점과 화장실이 있었다. 특이한 건 1회당 사용료가 200엔(약 2천 원)이나 되는 화장실이었다. 따로 돈 받는 사람 없이 각자 통에 100엔짜리 동전 두 개를 넣고 사용했다. 동전이 없는 사람은 지폐와 통 안에 든 동전을 임의로 교환했다. 정직을 최우선의 가치로 꼽는 일본다운 장면이었다.

5합목에서 출발한지 2시간 20분 만에 우리가 예약한 후지이치칸(富士一館)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에서 차려준 카레라이스로 저녁 식사를 했다.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인 우리는 새벽 0시 30분 산장을 출발했다. 8합목(3020m)까지 오르는 길은 아예 용암이 흘러내리다 제멋대로 굳어버린 바위 위를 걷게 돼 더 힘들었다. 등산객들은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올라갔다. 어느 누구도 추월하지 않았다. 앞사람이 쉬기 위해 잠시 등산로를 벗어났을 때야 비로소 앞서갔다. 이들은 질서를 지키는 게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몸에 밴 듯 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slow and steady)’의 힘은 컸다. 끝이 안 보이던 정상부가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4시 20분, 해돋이 시간이 가까워오자 후지산 일원은 돌연 ‘정지 모드’가 되었다.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오르던 사람들은 일제히 먼동 터오는 동녘을 향해 앉았다. 하늘이 펼치는 장엄한 ‘우주 쇼’가 시작되었다. 하늘이 시시각각 붉게 타오르더니 이윽고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점 원형 윤곽이 커지면서 붉은 기운이 온 하늘을 덮었다. 순간 두둥실 해님이 얼굴을 드러냈다. 사람들 모두 가슴에 저마다 간직한 무언가를 비는 순례자가 되었다. 왜 사람들이 날 밤 새며 후지산을 오르는지 이해가 됐다.

오전 5시 30분, 신사(神社) 경내를 상징하는 두 개의 나무 기둥 문 ‘토리이’를 지나자마자 우리가 밤새 그토록 바라던 정상부에 올랐다. 후지이치칸(富士一館) 산장을 출발한 지 다섯 시간 만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비록 젊었을 때부터 꿈이었던 히말라야 고산 등정은 아직 못했지만 이제까지 내 두 발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온 것이다. 정상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센겐대신(淺間大神)을 모시는 오구노미야(奧宮) 신사 앞에는 특히 더 많았다. 각자 소원을 빌며 ‘순례자’로서 마지막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에게 후지산은 ‘바라보는 산이지, 오르지는 않는 산’이라고 한다. 후지산은 신앙의 산이자 영봉(靈峰)이다. 중국 왕들이 봉선(封禪)의식을 지내던 태산(泰山)과 유사하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다. “평생 후지산에 한 번도 안 오르는 것은 바보다. 그리고 두 번 오르는 것도 바보다.”

이번 후지산 등정은 도전정신의 발로(發露)다. 도전정신은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에서 나온다.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이다. 나이 들어도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게 ‘도전정신’이다. 이번 후지산 등정을 통해 우리들은 ‘도전정신’과 함께 ‘자신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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