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는 일군의 우수한 예술가를 규합(糾合)하는 의미에 의해서 색채론이나 구도 및 작화(作畵) 심리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그들은 종래의 수법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독립적인 창작자의 결합에 관학적(官學的)인 가르침을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미학으로 혁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여 예술 전반에 기여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일면 인상주의의 사실적 태도와 그 기법과의 사이에 다소 균형을 잃은 점도 있었다.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내려고 시도하는 사실주의(寫實主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도리어 그들의 그림에서는 비속(卑俗)한 점을 면치 못하였다. 또는 가끔 평범한 제재를 크게 부풀려서 취급하고, 인생을 안이(安易)하게 일회성적(一回性的 )인 앵글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드가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심리적 종합이 그들의 화면(畵面)에서 결여 되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상파 화가들인 관학파의 풍유법(風喩法, allegory)을 싫어하고 상징·추상·로만틱풍(風)의 장면에 빠지는 것을 심하게 경계(警戒)하였다. 또 다른 사상에 관해서 빠져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 결과, 스스로를 직인화(職人化)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그들의 외부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내부에서 각종 형태로 이에 저항하는 자세라든지 하는 반동을 낳지 않을 수 없었다.

르누아르나 드가는 인상파가 조세판(調世板;Palette)에서 퇴치한 흑색을 애호했으며 르누아르가 불투명 화법을 회피하고 전통적인 투명화법을 채용한 일, 그리고 드가가 운동감이 있는 웅대한 구도를 항상 꿈꾸는 일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카리에르(E. Carriere), 판탱라투르(Fantin-Latour)와 같이 야외사생(野外寫生)을 주로 해서 묘사한 작가도 있었다.

그 외 퓌비스 드 샤반(Chavannes)·르동(O. Redon) 등의 동시대 작가들은 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데알리즘 내지 로만티즘의 화격(畵格)으로 성장해 갔다. 다시 소위 후기인상파라고 하는 작가 고갱·세잔(P.Cezanne)·고흐(V. van Gogh) 등이 각각 자연에 대한 태도라든지 표현수법으로 인상주의의 더 이상의 이론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신시대의 3자3양(樣)의 계기가 된 것 등은 그 가장 현저한 구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중부 프랑스에서 태어나 13세부터 제도(製陶)공장에서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공(畵工)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실직 후 교회당 장식(粧飾)에 종사하였다. 그 후 모네나 마네와 접촉한 후, 새로운 회화의 개척을 기도했고, 따라서 인상파 운동에 깊숙이 관여했다. 고전주의에 공감을 지녔던 시기를 지난 후, 그는 점차로 인상파에서도 시나브로 떠나서 독자적인 색채표현에로 정진하였다.

다시금 선려(鮮麗:신선하고 아름다움)한 원색의 대비에 의한 발랄한 감각표현에로 향하였고, 색조의 하모니(harmony:調和)속에 밝고 선명한 색채감이 넘치는 작품의 계열이 계속되었다. 장미와 아이들 및 나부(裸婦)들을 가장 좋아하는 화재(畵材)로 삼았으며, 소수의 조각 작품도 있다. 주작품에는 ‘해수욕장 풍경’, ‘큰 길’,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 아이들’, ‘릭상불 공원 풍경’과 ‘멱 감는 여인들’이 있다.

르누아르는 1881년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그 이듬해 파리로 돌아왔다. 행복한 인상주의자로 이름이 높은 그는 여행 중에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와 같은 피렌체의 거장들의 그림을 보고 인상주의에 대한 깊은 고뇌와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주의(寫實主義)는 일반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재현하려고 하는 예술상의 경향이다. 특히 19세기 중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 사조를 말한다. 현실을 존중하고, 주관에 의한 개변(改變)과 윤색, 장식(裝飾)을 배제하여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그 개성적 특질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고 하는 경향 또는 양식인데, 리얼리즘(realism)이라고도 한다. 또한 고전형식(古典形式)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 예술의 형식을 지칭한다. 특히, 조각에서 보는 바와 같은 조화와 균제의 미(美)를 이상으로 하는 예술 형식이다.

고전주의(古典主義:Classicism)는 17~18세기에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 사조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 작품을 모범으로 하여, 단정한 형식미를 중요시하고 이지(理智)·조화·균형을 추구하였다. 문학에서는 프랑스의 라신, 영국의 드라이든, 독일의 괴테, 미술에서는 보통 신고전주의라고도 불리는데 다비드·앵그르 등이 그 대표적인 작가이다.

르누아르는 그동안 인상주의 화풍에 모쪼록 전념했지만 1883년경부터는 이에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더욱 그러했다. ‘시골의 무도회’는 1883년에 완성한 작품인데, 인상주의에서 사실주의 필치의 고전주의 화풍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시도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기 친구인 폴로트와 환하게 웃으면서 춤을 추고 있는 모델 알린 샤리고를 아름다운 색조와 독특한 구도로 표현했다. 윤곽과 소묘가 사뭇 뚜렷하고 빛의 표현 역시 적당한 선에서 머물러 조화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나중에 르누아르의 아내가 된 샤리고는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의 화려함보다도 훨씬 눈부신 미소와 제스처로 이 그림의 총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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