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 어느 칠순 할머니와 함께 달리면서
[허정회 칼럼] 어느 칠순 할머니와 함께 달리면서
  • 허정회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7.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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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80kg 나가던 나는 40대 초반 큰 수술을 했다. 그때까지 운동과 담 쌓고 살았는데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운동하기로 작심했다. 옆에 살던 친구가 달리기를 권했다. 자기는 매일 학교 운동장에서 10바퀴 달린다고 했다. 그 친구 따라 운동장에 나갔다. 친구가 하루 운동량을 다 채우는 동안 나는 2바퀴도 못 달렸다. 나는 살기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달렸다. 밥맛이 좋아졌다. 덩달아 건강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같은 운동장을 40바퀴 달릴 정도가 되었다. 이러기를 30년 가까이 했다. 지금 내 체중은 50kg을 약간 웃돈다.

작년 한강변 근처로 이사 오게 되었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 나가 달렸다. 등교시간 한참 전이었지만 학생들 공부에 지장을 준다고 쫓겨났다. 하는 수 없이 낯선 한강 둔치로 나오게 됐다. 운동장과 달리 운동량 계산이 잘 안 되었다. 남들 따라 한강주로를 달렸다. 도로 달리기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거리도 늘려나갔다. 이제는 매일 10km 정도 달린다. 탁 트인 한강과 벗하며 달리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없다.

병원에는 건강검진 할 때만 간다. 의사가 체지방이 하나도 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모든 건강 관련 수치가 정상이다. 28인치 아래에서 맴도는 내 허리를 재던 간호사가 깜짝 놀란다. 엉덩이 때문에 할 수 없이 28인치 바지를 사지만 허리는 줄여 입는다. 나는 밥을 잘 먹는다. 남편 먹는 양의 2배는 먹는다. 잘 먹고 잘 달리니 체중은 변함이 없다. 나는 밥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고 생각한다. 약은 입에 댄 기억이 별로 안 난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은 몇 번씩이나 창가로 가 비가 그쳤나 확인해본다. 이런 나를 보는 남편은 ‘달리기와 결혼 했냐’고 빈정댄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몸살이 난다. 얼마 전에는 달리는데 갑자기 무릎이 아파왔다. 그러나 절뚝거리면서도 그날 목표량을 다 채웠다. 이튿날도 나갔다. 그 며칠 후 무릎은 저절로 나았다. 친구들이 이제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으니 좀 살살 하라고 한다. 그러나 친구들 말은 안 듣는다. 따라하면 나도 그들처럼 이 좋은 세상 구경 못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살 거 같아서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련다.

나는 세상에서 달리기가 제일 좋다. 음식도 밖에서 사먹는 거보다 집에서 내가 해 먹는 게 더 맛있다. 달리기 외에는 아무 욕심도 없다. 어디 여행 갈 줄도, 옷 사 입을 줄도 모른다. 그저 오래 동안 달릴 수 있게 건강만 받쳐주면 더 바랄 게 없다. 달리다 잠시 멈춰 경치 좋은 전망대에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내가 달리는 모습을 쳐다보는 사람이 많다.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달리니 신기한 모양이다.”

오늘 새벽 한강 둔치에서 우연히 만나 10여 km를 함께 달린 어느 할머니 얘기다. 한 시간 남짓 달리면서 많은 대화를 했다. 할머니는 달리기가 최고의 운동이라는 건강관리 철학도, 달리기를 대하는 시각도 나와 같았다. 오랫동안 달려선지 달리는 자세도 좋았다. 대화 중 여러 정황으로 짐작컨대 적어도 칠순은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에 딱 맞아 떨어지는 할머니다.

달리기는 참 묘하다. 다른 운동과 달리 생면부지와도 서로 말을 잘 섞는다. 오늘도 그랬다. 거의 매일 혼자 달리는 그 할머니는 달리고 있는 나를 보더니 무작정 따라 나섰다. 그리고는 십년지기를 만난 양 달리게 된 계기, 달리기의 장점, 하루 일과와 같은 사생활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털어 놓았다. 헤어지면서 오늘 이렇게 함께 달릴 수 있어 너무 좋았고 평소보다 훨씬 재밌게 달렸다는 예(禮)도 빼놓지 않고 갖췄다. 근래 달리기에 게으른 나를 깊이 되돌아보게 한 할머니였다.

허정회 칼럼니스트  hihuh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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