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정의, 참회와 배려.

 

 

채근담의 전집 60장에 “봄이 와서 화창하면 꽃은 한결 고운 빛을 땅에 펴고, 새 또한 고운 목소리로 지저귄다. 선비가 다행히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고 또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 윤택한 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의견을 내고 좋은 일을 행하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비록 이 세상에 백 년을 산다 해도 마치 하루도 살지 않음과 같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보도매체를 통하여 정치권의 행태를 조용히 살펴보면 한두 번 겪은 일은 아니지만 원죄와 그에 따르는 책임의 시작과 끝이 참으로 모호합니다.

과연 이 나라를 힘들게 하였으며 민족의 정기를 팔아 그동안 잘 살아왔으면서도 막상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손 하나라도 거들어 돕기는커녕 자신들에 찌들은 불합리와 부조리는 생각지도 않고 상대방의 조그마한 약점만을 문제로 삼아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국가의 동량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후보자는 애초부터 나서지를 말았어야 할 것이며, 적어도 청문인의 자격을 갖추려면 나 자신부터 돌아보면서 과연 당시 상황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등을 되새기며 어려운 나라의 가장 합리적인 사람의 길이 어디쯤 되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입으로는 온갖 깨끗한 것을 먹지만 막상 뱃속에서 배출되는 불순물은 과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모두가 직시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아픔을 보듬어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국내정치 뿐만 아니라 국제간의 정치현실도 정의롭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하여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강대한 나라의 이익과 당시의 형편에 의하여 편의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상당하다할 것입니다.

독일과 이태리와 일본이 3국 동맹을 맺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수도 없는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그로 인하여 인류에게 닥친 처절한 고통은 수십 년이 흘러간 지금도 채 아물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가슴을 쓰리게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 처절한 고통을 남겨주었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원죄의 대가로 그에 상응한 고통과 보상을 톡톡히 치른 나라도 있지만, 아직도 그 죄과를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의 승자로 자처하는 미국, 영국, 소련은 독일에 대하여는 국토를 동서로 나누는 형극을 내려 오랜 세월동안에 걸쳐 뼈저리는 분단의 아픔을 맛보게 하였으며 반성과 피해보상 또한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하지만 모두가 쉬는 휴일에 무방비 상태의 군사기지를 선전포고도 없이 급습하여 수도 없는 사람들의 무고한 생명과 재산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후 태평양의 전선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총알받이로 몰아 세계질서를 비웃던 일본은 지금도 반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의 승전국들은 당연히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일본의 허리를 자르도록 했어야 함에도 피해자이자 2차 대전의 공동 승자이기도 하였던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도록 결정하고 그로부터 5년 후 동족이 동족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싸우도록 한반도 분할공작을 하였던 일본에게 오히려 한반도의 피 값으로 부를 누리도록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지금도 쓰라린 남북 분단의 고통으로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보상을 해주는 대신 오히려 인격을 모독하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어거지를 쓰도록 방치할 뿐만 아니라, 편의적인 군사 동맹으로 오히려 두둔하는 것이 인류의 진정한 평화이고 진실인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한편에선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공할 무기를 개발하여 그로 인하여 제어를 한다 하고 그에 반하여 스스로 대항할 무기를 개발 했다고 자축하는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다시 우리 민족이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피를 흘리며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야 맞는 것인지 인류의 선각자들이라면 최소한 어두운 곳의 비탄을 살펴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주변 강대국들이 자신의 나라 입맛에 맞도록 편의적인 정책을 펴면서 아전인수 격으로 마치 한반도를 염려하는 것으로 막대한 경비를 요구하는 것은 무언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자국의 수많은 농업인등의 희생을 감내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체결하였던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결과 발생한 손실로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엄청난 이익을 누리고 있는 당사자는 중국을 비롯한 다수의 다른 나라가 있음에도 그보다 훨씬 적고 자원도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먼저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전말이 뒤바뀐 것으로 보여 집니다.

지난 1910년 경술국치의 날로부터 돌이켜보면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감당하기 힘든 처절한 시련을 주었으면서도 한 조각 반성조차 하지 않고 돈 몇 푼으로 인간의 자존심을 짓밟아 뭉개려 하는 행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탄핵정국의 암울하던 시간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과연 이를 자초한 세력이 누구인지 그 책임은 누가 감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참회와 반성이 없는 국내정치의 현실 또한 위 일본의 자세와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습니다.

자유, 평등, 정의를 부르짖는 인류의 평화는 누군가의 가슴 속에 있는 장식품이 아니라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진정한 참회를 통하여 상대방의 아픔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인도주의로부터 희망의 싹을 틔워 지고지순한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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