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베토벤 연주해석의 역설

기존의 베토벤 해석의 역설(逆說)같은, 필립 헤레베헤의 말을 빌리면 아주 큰 규모의 실내악인 베토벤 교향곡을 실내악 규모의 샹젤리제 오케스트라가 더 싱싱한 베토벤으로 들려줬다.

잘 알려졌다시피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18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 즉 하이든에서 말러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을 작곡가의 시대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곡가의 시대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만으로 차린 내한 연주회를 한다고 했을 때 관객이 가졌던 상념은 무엇이었을까?

 

필립 헤레베헤가 술회한 대로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할 때 토스카니니의 에너지 넘치는 해석이 있을 수 있고 클라이버와 같이 유연한 해석도 있을 수 있으며 카라얀과 같이 브람스 교향곡의 사운드로 베토벤 교향곡에 접근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관객이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에 기대하고 있었던 바는 베토벤 사후 190년이 지난, 기존 베토벤 교향곡 연주의 사운드틀에서 벗어난 신선한 연주의 맛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내한연주는 이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한마디로 더 생생한 음악적 경험의 베토벤 연주의 새 해석을 제시했다고 말하고 싶다. 더 날렵하고 투명한 사운드의 베토벤으로. 백년 혹은 이백년 전 당대의 음악 소통의 맥락까지 재현해 그 시대의 음조, 리듬, 음향까지 느낄 수 있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6월17일 토요일 저녁 싱가포르와 중국을 거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마지막 한국투어 공연을 가진 필립 헤레베헤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전반부 베토벤 교향곡 5번에서 연주여행의 여독피로를 느낄 수 없는 상큼한 연주로 더 투명하고 경쾌한 사운드의 시대악기 맛을 알게 했다. 대형 풀 오케스트라의 성량(聲量)감은 없었을 수도 있었으나 현악기 연주자들이 거트 현(현대 악기에서 사용되는 쇠줄 대신 동물의 내장을 꼬아 만든 현)과 고전시대에 사용하던 활을 사용해 더 선명하고 투명한 지적 사운드의 고음악 연주단체의 맛을 체험키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던 듯 싶다.

반면 후반부에 연주된 베토벤교향곡 제7번은 이런 신선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연주에는 다소 미흡했던 연주였던 것 같은데 헤레베헤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때로는 서늘하고 의고적인 시정으로 다듬어진 베토벤 교향곡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에서 이런 아쉬움은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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