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상공인의 근간(根幹)

【수도권=ndnnews】안홍필 기자 = 인천 개항 후 일본 상인들은 인천일본상업회의소를 결성하고 상권을 확장하기 위해 『상업회의소 월보』를 발간하여 교류 정보를 확대해 나갔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인 상인들도 1905년 7월 ‘인천조선인상업회의소’를 결성하고, 회두였던 최응삼이 최초의 경제 월간지인 『상계월보(商界月報)』를 창간했다.

1912년 5월 11일 발간된 창간호에는 월보 간행을 의결한 임원회의 의사록과 경과 등이 기록되어 있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출석원은 최응삼 씨, 강해원 씨, 손성칠 씨, 김성옥 씨 이상 4인인데 정각보다 30분이 지(遲)하여 개회하다. …(중략)… 회두 최응삼 씨가 상계 사정에 대하야 설명하되, ‘대저 상업회의소의 사정은 일본인상업회의소의 집무하는 규모를 관(觀)하여도 기관 월보를 발간하여 상황을 보도하는 것이 필요하니 본소에서도 월보를 발간하여 상계에 지식을 개도함이 여하오? 한데, 강해원씨는 ‘월보의 영향이 심대하니 발간하기로 작정하되 우선 20엽 가량으로 인쇄비를 탐지하자’ 하니 차에 대하야 일치 가결하다.”

비록 조선총독부에 의해 인천조선인상업회의소가 인천일본인상업회의소에 병합되어 문을 닫았지만, 『상계월보』는 매월 발행이 계속되어 1915년 4월 15일 제36호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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