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겨울날 고슴도치 몇 마리가 모여 있는데 서로 가까이 갈수록 가시에 찔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추위는 다시 모이게 만들었지만 결국 가시 때문에 또다시 떨어진다. 그런 행동이 반복적으로 보여 지다 이내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따뜻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찾는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소 논문집과 보충논문집>저서에 등장하는 고슴도치 우화에 대한 내용이다. 친밀함을 원하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자기 방어를 하게 되는 것을 ‘고슴도치 딜레마 증후군(Hedgehog's dilemma syndrome)’ 혹은 ‘호저 딜레마 (porcupine's dilemma)’라 한다. 우화에서 이름을 가져왔으며 호저는 쥐목 산 미치광이과로 몸에 길고 뻣뻣한 가시털이 덮여 있는 동물을 총칭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집단심리학과 자아의 분석>에서 인용하면서 심리학영역으로 인정되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애착형성이 쉽지 않은 사람들. 자연스레 고립되려는 고슴도치들

애착형성이 어려운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현대사회가 갈수록 계산적인 인간관계로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이들은 가까이 하고 싶지만 또 가까이 하기 싫어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번 상처를 입게 되면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아기 때 부모와의 애착형성을 통해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때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표상을 형성하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형성이 어렵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구름의 가장자리로 빛나는 희망을 찾기 위한 작전을 나타낸다. 주인공 팻은 사랑하고 믿었던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후 충격에 빠진다. 그 상처로 조울증을 앓게 되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다. 팻은 아내를 잊지 못해 과거에 빠져 있으며 새로운 사랑이 다가와도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결국 노력 끝에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타인과 교류하지 않으면 자신의 상처 속에 고립되어 평생 마음을 닫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40대 초반의 주부는 과거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제일 처음 가족들에게 버림받았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마음도 열지 않고 적당하게 거리를 둔다. 아무리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굳이 자신의 속마음이나 불필요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표면적으로 필요한 것만 말하고 지낸다고 하며 오히려 그것이 편하다고 말한다.

서로간의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고 SNS의 소통이 편한 인간관계가 되어버린 현대사회

시대가 갈수록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소통하며 대부분 네트워크상으로만 친구관계를 맺는 것이 빈번해졌다 점점 문자나 메시지로 교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어버렸다. 디지털데이터를 수신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 사람들과의 간접적인 관계를 맺는 ‘디지털 인터페이스(digital interface)’시대인 것이다. 대면관계는 드물어지고 온라인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에는 정(精)으로 긴밀한 관계였다면 지금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현상으로 점점 자기중심적인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깊게 사귀거나 가까운 사이가 되면 요구받는 것도 많아지고 거치적거린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상처를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고 싶지 않아 일부로 거리를 둔다.

사회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인간사이의 거리에 따라 인간관계를 4가지 영역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45cm 이내의 밀접한 거리로 아주 가까운 사람관계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연인 등이 속한다. 둘째는 45~120cm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개인거리로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는 거리다. 셋째는 120~360cm 이상의 거리로 사회적 활동과 사교적 거리다. 사회생활, 직업 등의 공식적인 행동을 할 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360cm이상으로 공개적. 대중적 거리다. 공개적인 만남으로 서로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다. 고슴도치가 서로에게 가시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거리, 인간관계에서도 서로가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처받기 두려운 사람들은 회피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거리를 두려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가시가 늘 존재한다. 가시를 잘 숨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금세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가시를 숨긴다고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상처받기 싫어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타인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누구나 존재하는 기본적인 욕구다. 관계 속에서 마음을 너무 주면 상대방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게 된다.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리면 외톨이가 되거나 혼자서 생활해야 하기에 스트레스가 된다.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을 경우 부정적 정서가 형성되는 것도 당연하다. ‘회피’방어기제를 통해 그 상황을 도망치거나 깊이 있게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안 만든다. 적당하게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인관계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생을 겪으면서 고민하고 극복해야 하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가시에 찔리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피하지는 말자. 적절한 거리유지를 통하여 관계를 재정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또한 상황을 잘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강한 내공을 쌓아 어떠한 가시가 들어와도 밀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르자.

<고슴도치딜레마 증후군관련 영화는 파수꾼/2011, 신세기 에반게리온 26편 중 4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3, 겨울왕국/2013 책은 고슴도치의 소원/톤 텔레헨 , 드라마는 로맨스 헌터 13회 /tvn,2007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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