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니까 / 양여천 시인


꽃이 피어야만 하니까 봄인거다
봄이니까 당연히 꽃이 피는 것이 아니고
꽃이 계절을 선택하여 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꽃이 피어야만 할 때가 꼭 지금, 봄이어야 했기에
봄은 그렇게 꽃으로 피어 사면 지경에 무성한거다

왜 하필 긴긴 겨울 지나고
조금 더 일찍 지금이 봄은 아니고
왜 하필 그 너무도 짧은 시간
조금 더 늦게 더운 여름이 아니냐고
묻지는 말자. 택한 모든 생명에는 다 그런 이유가
다 시작되고 끝나고 태어나고 죽는 기한이 수명이
정하여져 있음을. 때가 될 때까지는
그 무엇도 끝없는 기다림의 반복인 것을

때가 되어 지금이 봄인거다
기다림도 봄이었기에 괜찮다
봄이니까 다 괜찮다
이제 태어나도 괜찮고
사랑해도 괜찮다
아프고 서글펐던 시간은 이제 여기에 없다
봄이니까 온 세상에 꽃으로 환하다
이제 웃을 때가 되었다

신이 잠시 산과 들에 꽃으로 점을 찍던
붓을 멈추어 너를 보았다

너의 얼굴에도 꽃그림자로
함박 미소를 그려 넣었다
아팠던 것 하나도 기억나지 않게
꽃으로만 환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꽃이 피고 지는 길목 어귀에
눈물이란 눈물은 다 녹아서
진흙투성이 엉망이 된 얼굴로
꽃을 함박 묻히고 그 거리에 네가
꽃나무 한 그루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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