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망설이며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제노비스 증후군(Genovese syndrome)’이라 한다. 이는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키티 제노비스 살해사건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그녀는 성폭행 당한 뒤 무참히 살해당하면서 도움을 청했지만 이웃 주민들이 상황을 지켜보았을 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테인(Bibb Latane)'이 그녀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으며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혹은 ‘구경꾼 효과’라고 부른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지만 자신이 다치거나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 두렵다.

타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려는 행동을 했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했다. 노력했지만 결국 그 사람이 죽게 될 경우 도와준 사람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씌우게 된다면 누구든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옛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적반하장 격이 된다면 불이익을 감수하고 도와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정의감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를 TV매체에서 왕왕 보게 되니 더더욱 도움 주는 것을 꺼리게 된다. 그런 일을 대비해 만든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이는 응급 사항에 처한 환자를 도울 목적으로 행한 응급처지 등이 본의 아니게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거나 사상(死傷)에 이르게 한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형사상의 책임을 감면해주는 법률상 면책을 의미한다.”(네이버지식백과 발췌) 이러한 법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은 그 상황을 회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배테랑’이 있다. 광역수사대경찰 서도철과 재벌 3세인 조태오가 등장한다. 부조리한 자본주의 사회에 피해보는 약자와 강자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성 있게 다뤘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도철과 조태오의 도심 격투신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에서 경찰 서도철이 조태오에게 일방적으로 맞지만 시민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구경꾼처럼 물러서 방관하고 있거나 심지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예전에 중학교에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아마도 방관자의 모습을 학교라는 집단만큼 많이 보여 지는 곳도 없을 것이다. 청소를 하다가 아이 두 명이 싸움이 붙었다. 한 아이가 지속적으로 맞고 있는데 아이들은 선생님을 데려오거나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았다고 한다. 결국 지나가는 선생님에 의해 싸움은 중단되었다. 그중 어느 누구도 그 상황을 정리하거나 도와주려는 아이들이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도움을 왜 방관하게 되는 것일까.

목격자가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지기에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책임감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라 한다. 즉, 혼자일 때는 책임을 지려 하지만 열 명이 있으면 10분의 1로 책임감이 분산되어 그 중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이 된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막스 링겔만(Max Ringelmann)’은 줄다리기실험을 통해 개인의 힘을 100으로 가정하고 힘의 사용을 측정하였다. 두 명이 끌 때는 개인의 힘을 93%, 세 명일 때는 85%, 여덟 명일 때는 64%밖에 힘을 쓰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사람 수가 많아질수록 힘에 대한 책임감 분산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라고도 부른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츠(Daniel Katz)’와 ‘플로이드 올포트(Floyd Henry Alport)’는 긴급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다원적 무지(pluralistic lgnorance)’라 하였다. 사람이 많을수록 상황에 관심을 갖지 않는 대중적 무관심으로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이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화재 벨이 울리거나 긴급 상황이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다르다. 그들이 상황에 동요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은 거라 판단하여 자신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는 ‘동조 효과(conformity effect)’와 같은 맥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 의견이나 판단을 달리할 때 불안정감과 불편 감을 경험한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다수에 이끌려 자신의 가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절된 관계, 이웃 간의 교류가 점점 줄어드는 사회 속에 방관자가 늘어난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무관심형 방관자는 누군가는 하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자신한테 배정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냉소형 방관자는 잘난 사람들이 하겠지, 알아서 잘들 해봐 등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관조형 방관자는 누군가는 처리하겠지 하며 끝까지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인다. 요즘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혼술, 혼 밥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정(精)이란 옛말이 되어버렸다.

샘 소머스 심리학 교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가끔 한번 씩 눈가리개를 풀어라,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면 주의 깊게 살펴보라.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할 거라는 생각하지 말라,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믿음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신고하는 실수가 훨씬 났다”라고 했다.<무엇이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하는가 中>

모든 주변을 잘 관찰하고 한번쯤 의심해보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려는 마음은 가졌으면 좋겠다.

<제노비스 증후군관련 영화는 논스톱/2014, 에코/2009, 레옹/1994,2013 베테랑/2015, 책은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디디에 드쿠앵, 드라마는 솔로몬의 위증/JTBC,2016,원티드/SBS,2016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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