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딸 결혼식을 치렀다. 양가 가족과 친지, 신랑‧신부 친구와 직장동료 그리고 혼주 친구 몇 명만 초대했다. 주례 대신 내가 성혼선언을 하면서 결혼생활에 도움 될 만한 얘기를 짧게 했다. 축가는 신랑이 직접 신부를 위해 불러 호평을 받았다. 내 뜻에 따라 축의금도 정중히 사양 했다.

식 후 일부 지인에게 딸의 결혼소식을 알렸다.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고 ‘너무 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 “생각은 있어도 실천하기 힘든 건 데 대단하다”고 말했다. 자식들은 ‘작은 결혼식’으로 하고 싶다는 평소 내 소신을 실천해 가슴 뿌듯하다. 결혼식은 일방이 이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다행히 양가가 의기투합 했기에 가능했다.

우리 결혼문화는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 남의 눈을 의식해 형식에 치우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하객수로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평소 모임에 잘 안 나오던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면 머지않아 자식 혼인 시키는 경우가 많다. 직위를 이용해 안면 정도만 있는 사람에게도 청첩장을 보내 축의금을 챙기기도 한다.

청첩 방식도 문제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봉투에 받을 사람 성명도 적지 않고 나눠 주는 건 예사다. 홈페이지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너무 간편하고 쉽게 청첩하기도 한다. 나는 일일이 펜으로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 보냈다. 초청할 사람이 적어 가능한 일이었다.

축의금도 부담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결혼축의금이 가계에 부담 되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부담스럽다’가 13%, ‘약간 부담스럽다’ 55%로 68%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경우 소액을 송금하거나 지인을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 경조사비 지출은 대부분 가계에 골칫덩이 중 하나지만 사회적 관행이라는 이유로 별 수 없이 따라 하고 있다.

진정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 하러 식장에 가는 게 아니라 혼주와 맺은 관계로 피치 못해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서도 예식을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은 드물다. 혼주와 눈도장 찍고 봉투를 낸 다음 피로연장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객이 아니라 끼리끼리 회식하러 식당에 온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낮인데도 축하를 구실로 지인들과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경우도 허다하다. 천박한 결혼문화라 아니할 수 없다.

주말이면 결혼식에 참석 하느라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귀중한 시간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사는 꼴이다. 내 자식 결혼 때 얼마를 들고 왔으니 그만큼 안 넣어 갈 수 없는 노릇이다. 결혼식이 마치 품앗이 같다. 수많은 결혼식에 다녀왔지만 예식이 개성과 실속 있어 뜻 깊었다기보다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제까지 기억에 남는 멋진 결혼식은 단지 두세 번에 불과하다.

허례허식 결혼문화를 개혁해야 한다. 배운 사람, 가진 사람, 높은 사람부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혼주가 아닌 가족과 신혼부부 위주로 초청해 품위 있는 의식을 행하자. 일본처럼 참석 가능한 하객들만 지정좌석으로 모시자. 축의금은 자기 분수에 맞는 합당한 수준으로 하자.

작은 결혼식을 하면 이 모든 게 해결된다. 작은 결혼식을 올린 부부의 93%가 주변 지인에게 추천 하겠다고 답했다 한다.(조선일보,2016.12.24) 나 혼자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자. 비록 작은 힘이지만 나부터 실천하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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