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은 행복하다. 걷기여행은 자동차여행보다 자유롭다. 걸으면 맘도 몸도 건강해진다. 눈과 입도 즐거워진다. 남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겸허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신발만 있으면 되니 어느 운동보다 경제적이다. 걷기의 장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 취미 중 하나는 걷기다. 서울둘레길, 여수 비렁길, 울릉도, 안면도, 부안둘레길, 평화누리길 등 전국의 여러 길을 걸었다. 지난 2012년부터는 친구들과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나있는 약 770km의 국내에서 제일 긴 둘레길이다. 우리는 고성부터 시작해 포항까지 약 480km를 걸어 내려왔다. 매년 두 차례 3박4일 간 약 50km를 걷고 있으니 앞으로 3년 후면 부산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해파랑길을 다 걸은 후 무얼 해야 하나 고민 하던 중 지난 6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정부가 다양한 관광 콘텐츠 확보를 위해 동‧남‧서해안길과 DMZ로 이어지는 4500km 걷기여행길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세 배나 되는 길이다.

며칠 전 ‘코리아 둘레길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건전한 여가문화 창달과 증가하는 걷기여행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초장거리 도보여행길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약 2500km 기존 길에 새로 약 2000km를 조성하는 길 잇기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후보 노선을 선정할 때 보행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기준도 있었다.

나는 방청석에서 세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첫째, 명칭 문제였다. 사물의 명칭은 사람의 이름만큼 중요하다. 명칭 하나로 그 프로젝트의 성패가 결정되기도 한다. 명칭에는 그 사업의 특징과 정체성이 드러나야 하며 외래어는 가급적 지양하는 게 좋다. 이런 면에서 ‘코리아 둘레길’은 ‘대한민국 둘레길’이라든지 ‘한반도 둘레길’ 등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 영문으로는 ‘Korea Trail'로 표기하면 될 것이다.

둘째, 유지‧관리 문제였다. 둘레길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전성 확보와 유지‧보수다. 해파랑길에는 가드레일도 없는 위험 구간이 종종 있다. 이런 곳부터 도보여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처음 가는 길에 이방인이 의지할 건 지도(걷기여행 관련 앱 포함), 안내판, 길 표지 스티커나 리본 정도다. 하지만 지자체가 얼마나 유지‧보수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구간 별로 차이가 많이 난다. 해파랑길에 미친 한두 공무원만 있으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해파랑길 조성은 주로 중앙정부 예산으로 했지만 유지‧관리는 당해 지자체가 맡고 있다. 표가 안 되기에 둘레길 관리에 지자체장이 관심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이는 낳기보다 기르기가 더 힘든 법이다. 이왕 둘레길을 조성했으면 유지‧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해파랑길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그보다 다섯 배나 더 긴 ‘코리아둘레길’의 사후 관리가 걱정된다.

셋째, 숙박시설 문제였다. 많은 도보여행자들이 찾는 둘레길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이고 편리한 숙박시설을 두루 갖춰야 한다. 해파랑길 주변 숙박시설로는 값비싼 펜션, 불편한 민박집, 모텔 등 뿐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이 있지만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둘레길이 성공하려면 예약을 하지 않고도 쉽게 머무를 수 있는 경제적인 숙소 설비 마련이 최우선이다.

‘코리아 둘레길’ 조성 사업은 중앙정부가 주도 하되 지자체와 민간 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과 협조로 이루어져야 한다. 4대강 사업을 반면교사로 삼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걷는 사람과 지역주민이 상생하여 지역경제가 활성화 될 때 지속가능한 길이 될 수 있다. 걷는 길 조성 및 관리와 관련한 법제화도 과제다. 이상 지적한 몇 가지만 보완한다면 ‘코리아 둘레길’은 내외국인이 많이 찾는 도보여행 명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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