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모네에게 / 양여천 시인

 

시리고 아린 겨울의 뺨을 만져보자꾸나
너에게 있고 나에겐 없는 것
자꾸만 자꾸만 넋을 놓고 있게 된다
불붙은 것처럼 나무가 옷을 벗고 있다
다정했던 추억이 어느덧 저녁의 붉은 햇살에
땅을 뒹굴고 있다, 차가워져만 가는
아프고 시린 기억의 겨울을 다시 한 번 품어보자
나에겐 이제 눈물이 없다
외롭던 날들을 지나고 너를 만나
내 외로움은 모두 그리움으로 산화하고 말았으니까
재가 되어 손끝에서 바스라지더라도
나는 이 말을 꼭 너에게 전해야만 하겠다
열정으로 달려갔던 그 황금빛 모래사장에서
바다는 눈물이 말라버려 갯벌이더라
내 영혼에서는 너를 만나 외로움도 허허갯벌이더라
따스하게 나를 안아 주던 너의 곁에서
내 아팠던 날들은 파도처럼 가슴만 훔치고 있더라
그렇게 내 혼자였던 날들은, 사랑 한 조각의 붉은 배로
그 바다위에 띄워 보냈어라
다시 헤어짐이 내게 찾아올 날이라면
나는 내 손끝으로 차가워진 너의 얼굴을
차창밖에 서서 흰서리를 닦으며
입김으로 영원히 미소지으며 손 흔들고 있으리라
낙엽의 빈 몸뚱이를 태워버려야 할 때가 온다면
내 가슴에서 내 영혼도 뽑아내어
아네모네에 같이 적어 넣어주렴
안녕이란 말은 죽어도 하지 않으련다
아네모네 붉은 한 조각의 꽃잎
시들어도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리라
그 어떤 사연이라도 괴롭지 않으리라
곁에 있어 행복했었던 그 날들 속에 눈 감으리니
영원이여 나를 축복하소서
하얗게 영결하는 얼음으로 발을 떼지 못하고
차갑게 뒤돌아 설 수 없도록 내 발을 이곳에 심어주기를
푸르디 푸르렀던 저 하늘에만 나를 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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