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기준은 역사가 생긴 이래로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으나 사람마다 그 기준도 다르고 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어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많은 연구가들이나 성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플라톤의 행복 기준은 1.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2.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3. 사람들이 절반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4.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듣고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라고 했습니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행복이란 결국 많음이 아니라 다소 부족함에서 시작하여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통해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많은 경우 그런 사람들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기보다는 더 많이 가지려다가 불행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장자(莊子)는 인간이 태어남을 편안히 하고 죽음을 순리에 맞게 받아들이면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우리 마음에 들어 올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서 이것을 매달림에서 벗어나는 것, 즉 '현해(懸解 -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라며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는 상태에 도달하면 행복한 상태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장자(莊子)는 사람들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을 물구나무 선 듯이 무엇인가 거꾸로 살아가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바삐 살아가고 있다면서 자신의 성정보다 사회의 평균적 잣대를 흘깃거리게 되면 그것은 거꾸로 선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고 평안한 상태에서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中庸)을 실천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고 하였습니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양이 다를 수 없고, 세대별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나 공자의 ‘살아가는 데 약간의 물과 별것 아닌 한 줌의 쌀에 만족하며 잠자기 위해 팔베개를 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행복은 바로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법정스님의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겠지만 자기 마음 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라는 말과 잉그리드 버그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할 때 더 행복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말, 그리고 플라톤의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을 얻는다.’ 와 묵자의 ‘남에게 잘하면 결국 내가 행복하다.’라는 말도 같은 의미로 행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결국 행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 안에서 자기만족을 하면 저절로 찾아오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더 큰 행복을 찾기 위해 행복하지 않게 지내는 경우가 더 많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스트레스를 느끼고 비참한 기분으로 일터로 나간다면 그날 하루는 행복할 리가 없겠지요. 그러므로 오늘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행복한 일이 찾아오겠지, 나는 행운이 많은 사람이야 라며 긍정적인 암시를 한다면 좋은 기운이 나에게 찾아와 행복한 하루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사업가 빌 게이츠의 ‘항상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라는 말로 행복을 만드는 하루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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