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 양여천


가을이 되면 
나무는 
제 몸속에 있던 
모든 색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제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이고는 
고요히 엄숙하게 
하늘을 향해 선다 

한 해 동안 
신 앞에 섰었던 모든 시간에
진실과 전심으로 사랑했었는데 
이제 긍지만이 더 높아 푸르러져 가는 
자신이 사랑했던 하늘을 향해 선다

그 하늘이 제 머리끝에서 
한없이 멀어져 가는 것을 
더는 주체할 수가 없어 
비틀거리면서 그는
제 몸을 빠져나가는 
붉은 색소들을 뚝 뚝 흘려놓는다 

제 몸을 부수고 달아나는 
낙엽의 화염속에서 
나무는 마지막으로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절망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 
몸부림을 치며 

나무가 그토록 사랑했던 세상속에
사계의 초록이 붉은 피로 
그를 이탈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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