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와 꼭 닮은 꼽등이라는 곤충이 있다. 꼽등이는 바퀴벌레보다도 생명력이 훨씬 강한 일명 죽지 않는 벌레로 알려져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베란다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울음소리를 따라 가까이 가보니 녀석은 갑자기 소리를 멈추고 죽은 척 하고 있었다. 몸 빛깔은 진한 흑갈색으로 앞가슴에 노란색 점무늬가 복잡하게 나있는 걸로 보아 꼽등이인 듯 꼽등이 아닌 꼽등이 같은 귀뚜라미이다.

잡아서 밖으로 보내 줄까 하다가 그냥 같이 살기로 했다. 녀석과 나는 베란다와 거실을 오가며 서로 마주쳤지만, 침묵속의 경계선을 그어 놓은지라 서로 모르는 척하며 초가을을 같이 보내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데,

바람이 불어오던 날, 녀석은 거실로 슬금슬금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행동도 둔하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새벽까지 자연의 멜로디를 연주해주는 귀뚜라미가 왠지 좋다.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는데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말이 있다. 남녀가 사랑으로 가정이라는 섬을, 친구사이에 우정으로 모임이라는 섬을, 직장인들이 협동으로 회사라는 섬을 만들었듯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결국 사람들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나와 귀뚜라미 사이에는 무언의 경계로 보이지 않는 섬이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침묵속의 경계선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자연으로 되돌려 보낼 일이다.

 

자연은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추억의 섬

현대를 가리켜 3M 시대라고 한다. Mass(대량), Machine(기계), Money(돈)의 흐름이 21세기를 주름잡고 있다. 자신의 이익추구와 편리만을 쫓는 인류문명의 발달은 국가는 물론 집단사회, 개인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정글법칙에 따라 끝없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농촌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적 논리로 보면 분명 위기다. 과거에 농촌은 도시의 가치를 지향하며 농촌 환경을 개선해왔지만, 그 환경이 산업사회의 먹이사슬 속에 갇혀버렸다. 그리하여 도시는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농촌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농촌의 아름다운 섬이 있는 한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의료원이다. 앞으로 도시는 농촌에 대해 각양각색의 섬을 요구할 것이다.

이에 농촌은 도시사람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섬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섬은 어떤 곳인가. 바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추억의 섬, 달빛아래 서면 숨막힐 듯한 메밀꽃밭 같은 곳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소금밭 같은 하얀 메밀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작은 꽃송이로 뒤덮인 메밀밭을 보노라면 자연미에 의지하여 서러운 삶을 위로받고 싶은 신정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이효석 생가와 문화마을 주변에 드넓게 조성된 메밀꽃밭은 여행객들을 유혹하고도 남을만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진정 메밀꽃 필무렵의 자연은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추억의 섬, 누구나 꼭 가보고 싶은 섬이다. 곧 농촌의 대표적인 문화적 가치이다.

 

추억의 섬 속에 담긴 농촌문화

사람들은 흔히 자연을 어머니에 비유한다. 그래서 힘이 들 때면 자연을 찾아 떠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 이처럼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자연의 섬은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조한다. 메밀꽃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들은 농촌의 추억을 듬뿍 담고 있다.

나는 진정 자연의 섬 농촌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좋아할 뿐인지 자신이 없다. 일단 귀뚜라미와의 사이에 침묵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녀석을 자연의 섬으로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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