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도가 만들어 낸 빵

유럽의 고급식단은 아침식사 마다 최소한 열 가지가 넘는 빵들이 나온다. 빵마다 맛과 향도 다르고 생김새도 천차만별이다. 유럽은 그만큼 빵의 왕국이다. 하지만 유럽의 빵의 역사는 우리나라 쌀밥보다 짧다. 심지어 8~9세기까지 유럽 사람들은 빵을 잘 몰랐다. 당시 그들은 밀이나 보리를 갈아 만든 거친 가루를 우유나 염소젖에 타서 그것을 끓여 마셨다. 12~3세기에 들어와서 유럽사회의 식생활은 서서히 유동식에서 빵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빵이 있었지만 빵은 특권층만 맛볼 수 있는 대단한 것이었다. 밀을 오래 전부터 재배해왔던 유럽에서 빵의 역사는 왜 그렇게 짧았을까. 일반계층은 왜 빵을 먹을 수가 없었는가.

빵은 밀로 밥을 지어먹을 때 나타나는 소화흡수와 이질감 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식생활 방법이다. 허나 빵은 생각처럼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력이 필요했다. 밀 껍질을 벗겨내야 했고, 그것을 다시 가루로 만드는 가공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력과 공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밀 껍질을 벗기고 밀가루를 만들어 빵을 구워내는 노동력은 모두 사람들의 몫이었다. 특히 밀가루를 만드는 작업은 그들에게는 고된 노동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동력과 기계가 발달하지 못했던 근세 이전만 해도 빵은 아무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니었다. 노동력을 부릴 수 있는 특권 계층이나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위 장원의 영주(領主)나 사제(司祭), 제후(諸侯)와 같은 특수 신분들이었다. 그들은 장원이나 도시에 빵 가마를 장악하고 농노나 노예들을 동원하여 빵을 구웠다. 이처럼 유럽의 빵은 농노나 노예제도의 발달과 함께 궤를 같이 하며 발달했던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노예를 부릴 수 있었을까.

당시 유럽은 노예가 풍부했다. 전쟁포로와 해적에게 붙잡힌 사람들이나 채무를 갚지 못한 사람, 그리고 노예의 자녀들이 노예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특히 아테네의 경우에는 노예 수가 전체인구의 30퍼센트 정도로 노예가 많았다고 한다. 유럽의 많은 노예들은 귀족들의 빵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반면 서민들은 노동력을 조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빵이 일반 대중에까지 보급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축력이나 물레방아의 개발과 이용, 그리고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은 밀가루나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크게 완화시켜 주면서 빵을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된다.

 

빵을 보급시킨 물레방아

아시아 지역의 쌀밥은 오래 전부터 우리 식탁에 정착했지만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빵은 유럽사회에 정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 유럽의 식생활은 밀로 만든 ‘흰빵’이 중심이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조차 ‘흰빵’을 먹을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호밀로 만든 검은 빵이나 보리로 만든 보리빵, 그리고 귀리빵을 흔히 먹었다. 특히 밀의 작황이 좋지 않아 밀값이 폭등하거나 밀이 부족하게 되면, 유럽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귀리나 호밀로 만든 검은 빵을 먹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는 동안 유럽은 전염병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노예제도의 후퇴로, 밀 빻는 데 노예를 동원하는 일이 점점 어렵게 된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노예 대신에 밀을 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흐르는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물레방아를 돌려 밀을 빻는 방법이었다.

3세기 이후 물레방아는 유럽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레방아는 아무데서나 설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낙차가 큰 개울이나 물살이 급한 하천의 일부에서만 설치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물레방아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한 유럽전역에까지 보급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2세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유럽의 북부 스칸디나비아나 아이슬란드, 폴란드 등지에서도 물레방아를 돌리게 된다. 아울러 1765년 제임스 와트에 의해 발명된 증기기관은 유럽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게 된다. 증기기관이 산업 모든 분야에 도입되어 유럽의 생산력을 크게 상승시킨 것이다. 빵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노예와 가축, 물레방아에 의존하던 제분공업이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눈부시게 발전하여 유럽사회 경공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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