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서너 차례라도 달리기를 꾸준하게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바빠서, 피곤해서, 비가 와서와 같은 핑계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하는 소설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백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트럭 가득히 있다.” 달리기에 관해 그가 지은 책「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나온다. 달리는 사람이라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오늘 새벽도 그랬다. 아파트를 나섰는데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길이 젖어있었다. 빗방울은 떨어지고 있지 않았지만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거 같았다. 이때가 중요하다. 달릴 건가 말 건가를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왕 마음먹고 나온 거 그냥 달리기로 했다.

한강 공기는 평소보다 더 상큼했다. 여느 때와 달리 산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달리는 사람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도 안 보였다. 최근 새로 포장해 말쑥하게 단장된 주로(走路)를 혼자 달렸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땀이 난 몸을 시원하게 식혀줬다. 땀으로 젖으나 비로 젖으나 젖는 것은 매한가지다. 오늘따라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스톱워치도 차지 않았다. 가벼운 달리기 차림이니 젖어도 걱정될 게 하나 없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가지면 가질수록 걱정거리가 많은 거 같다. 뺏기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살거리만 있으면 몸에 지닌 게 없을수록 염려할 게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더 가지려 한다. 가진 사람일수록 더한다. 그러다 패가망신하기 일쑤다. 신문에서 종종 접하는 기삿거리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인 것이다.

일전 신문에서 읽은 행복한 노후에 관한 글이다. 노후 행복을 위해서는 ‘5f’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finance), 할 일(field), 함께 할 친구(friend), 재미(fun)와 건강(fitness)이 필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5자’라고 한다. ‘놀자’, ‘쓰자’, ‘베풀자’, ‘웃자’, ‘걷자’가 그것이다. 쉽게 공감 가는 얘기지만 이걸 실천하는 건 쉽지 않다.

친구들과 두 달에 한 번 꼴로 걷기여행을 한다. 수년 전부터 시작한 해파랑길은 절반 넘게 걸었다. 해파랑길은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해 부산까지 약 770km에 달하는 동해안 둘레길이다. 서해안 안면도, 부안 마실길과 남해안 여수 비렁길도 걸었다. 한결같이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우리 산(山)들(野)해(海)다. 이런 여행을 하면 ‘5자’를 거의 다 이루게 된다. 하루 반나절 적당하게 걸은 후 우리끼리 자연휴양림에서 밥해먹고, 즐기고, 쉰다. 이 여행을 함께 다녀온 친구들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행복했다’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이렇게 노는 것도 다 때가 있다. 환갑 지난 나이에도 아직은 일해야지 놀 때가 아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간 평생 놀지 못하고 즐기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는가.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먹고 살 것만 있으면 즐기면서 생활하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일이다. 어느 정도 벌어 놨으니 이제 좀 놀아볼까 하면 이미 때는 늦었다. 놀 기운도, 함께 할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또 놀아보지 않았으니 놀 줄도 모른다. 노는 것도 평소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싫던 좋던 우리 삶의 패러다임이 바뀐 걸 인정하자. 지금 나이 60대 이상은 ‘불운한 세대’다. 나름 정성껏 부모님께 효도를 했는데 정작 자식들한테는 그걸 기대할 수 없다. 젊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 이제 좀 즐기려 했는데 노후대책을 세우지 않아 그럴 여유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나머지 인생을 즐길 궁리를 하자. 21세기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찾고 그걸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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