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비자가 전화를 했다 “한국소비자원이죠   의료 상담 좀 할려구요.... 배가 아파 1주일 동안 동네 병원을 다녔는데 의사가 장염이라고 해서 처방해 주는 약만 먹었어요. 근데 도무지 복통이 낫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큰 병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아 보니 맹장염(의료 용어로 충수염이라고 함)이라고 하였다니까요... 의사가 응급 상황이라고 해서 바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한 의사 말이 조금만 늦었으면 복막염이 될 뻔 했데요! 큰일 날 뻔 했죠   그래서 내가 동네병원을 대상으로 위자료를 청구하려고 하는데 며칠 동안 복통으로 고생한 것을 생각해서 수술비랑 위자료 500만원은 받아야 될 것 같아요.... 가능한가요  ” 이렇듯 많은 의료 상담 중에 오진에 대한 상담이 약 15~20% 정도이다.

환자가 아파서 병원을 방문하였을 때 진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가 의사에게 진술하는 본인의 증상이다. 병원에서는 보통 문진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필요에 따라 시진(視診)· 청진(聽診)·타진(打診) 등이 이루어지고 이후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혈액 검사, X-ray 등 영상 검사, 초음파 검사 및 각종 필요한 검사를 하며 그 결과를 종합하여 질병을 추정 진단 혹은 확진을 하게 된다.

특히 암이 의심되는 경우는 암이 있는 부위의 조직을 일부 떼내어 해부 병리과에서 정밀 검사를 한 후 확진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사람의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1~2회의 진찰만으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 의학 기술 발달이나 각종 검사 기계의 개발로 질병에 대한 조기 진단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으나 인체의 불가 예측성이나 환자의 개별적인 증상, 특이성, 환자들의 의학적 지식 향상 등으로 인해 의사의 오진에 대한 분쟁은 그리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진에 대한 우리나라 법원의 판례는 의사가 오진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법률적인 과실과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진에 대한 과실 판단은 첫째, 의사가 환자의 증상 호소에 대해 진단을 위한 평균적인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가 중요한 관건이고,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의사가 오진을 하였다고 하여 바로 고의나 과실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고의나 과실로 인하여 오진을 하였다는 사실에 관한 증명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법원 판례의 태도이다.

즉 의사가 오진은 하였지만 당시 상황에 대해 최선을 다한 진료를 한 경우라면 오진을 하였더라도 과실이 없다는 것인데(대법원 72다 2319), 의사가 산전 기형아를 진단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도 의사가 임산부에 대한 상담과 각종 검사 및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으나 태아의 왼쪽 손목 이하 발육 부전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 “초음파 검사상으로도 태아의 왼쪽 손목 이하 발육 부전을 발견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 등에 비추어 의사가 태아의 기형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의사에게 어떠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였다(대법원 98다 33062).

한국소비자원에서도 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오진 상담인 경우는 소비자에게 그 사유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고 했다. 처음 소개한 맹장염 오진의 경우 오진한 의사 때문에 며칠간 배가 아파 잠도 못자고 버티다가 결국 다른 병원을 가서야 겨우 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부랴부랴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에게 책임 물을 것이 없다니.... 어떤 소비자가 화가 나지 않을까   하지만 의사가 환자의 복통 호소에 대해 신체 검진 후 복부 X-ray도 찍고 혈액 검사와 초음파까지 한 후 맹장염이 아닌 장염으로 진단하였고, 또한 소비자의 맹장염 진단이 약 1주일 정도 지연되기는 했으나 맹장(충수)이 천공되거나 복막염이 진행된 소견이 없었다면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복통으로 1주일간 고생한 것 이외 명확한 확대 피해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의사가 당시 어떠한 검사도 없이 문진과 촉진만으로 맹장염이 아닌 장염으로 보고 1주일간 약만 주었다면 당연히 오진에 대한 책임이 있을 것이고, 맹장염이 천공되지 않았더라도 1주일간의 동네 병원 치료비 일부와 비록 작은 금액이 되겠지만 1주일간 복통을 힘들게 견딘 소비자의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할 것이다. 오진에 대해 의사에게 책임이 인정되고 소비자의 확대 피해가 입증된다면 실제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오진에 따른 불필요한 치료비, 질병 진행에 따른 확대 치료비, 추가 입원 기간 동안의 일실이익(입원 기간 동안 일을 못한 부분, 가정 주부도 해당), 위자료 등이다.

그러나 암 오진의 경우는 다르다. 암은 진단과 치료 모두가 어려우므로 암이 진단되었을 경우는 직업이 있었더라도 암 진단 후에는 정상적인 생업에 종사하기가 어렵다고 보아 손해배상 청구는 거의 위자료만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법원은 사망에 대한 위자료 금액을 현재 최고 5,000만원~6,000만원 정도로 산정하고 있으나 암 오진은 신체 부위별로 차이가 있고 의사의 암 오진으로 인해 환자가 암의 조기 발견 및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하여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이익을 침해한 것에 대해 위자료 책임만을 인정하고 있다.

오진에 대한 위자료.... 그 산정 기준은 무엇일까  법원에서도 실제적으로 위자료에 대해 별도의 산정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위자료 금액을 결정할 때 참조하는 것은 환자의 나이, 가족 관계, 질병 및 기왕력, 진단 지연 기간, 병의 예후, 의사의 책임 정도 등을 모두 종합하여 위자료를 산정한다. 하지만 오진에 대한 판례도 병의 경과 및 사실 관계가 다양하여 폐암 오진의 경우 1,000만원~1,500만원, 간암 오진의 경우 2,000만원~4,000만원, 최근 매스컴에 많이 보도되었던 유방암이 아닌 환자를 유방암으로 오진하여 유방 일부를 절제한 사건에 대해 3,900만원을 배상하도록 한 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오진 시기가 말기 암이었는지 조기 암이었는지와 혹은 암 오진으로 치료 기회를 상실하여 조기에 사망한 경우인지 아니면 아직 치료 중인지 등 다양한 병의 경과와 결과에 따라 위자료 금액에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도 각종 오진에 대한 위자료는 법원에서 참조하는 기준을 고려하고 있지만 판결이 아닌 화해 조정인 점을 감안하여 법원보다 적게 산정하고 있다. 65세 여자 환자의 간암 말기를 오진하여 조기 치료의 기회 상실로 7개월 만에 사망한 사건에 대해 위자료 1,20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한바 있고, 맹장염 오진으로 확대 피해를 입은 사건의 경우 위자료 20만원, 위장관 조영술 후 위암을 발견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위자료 500만원, 골육종(혈액암의 종류) 진단 지연에 대해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도록 조정한 바 있으나 소비자들은 늘 위자료 금액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나 각 사건마다 사실관계와 결과가 달라 위자료 금액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의사의 오진에 대해 소비자들은 의사의 과실과 상관없이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작은 고통이었을지라도 당시에는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질병의 다양함과 신체의 특이성 등으로 진단을 못한 것이 왜 모두 의사의 책임이냐 의사가 신이냐 ” 라며 항의하는 의료인도 적지 않다. 오진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도 환자도 모두 노력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진찰과 검사 및 각종 검사물 판독에 있어서 의사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오진에 대한 현실적 위자료 산정액에 대해서는 질병, 진단 지연 기간, 환자의 연령, 예후, 의사의 책임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효율적인 보상 기준과 체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글 / 권남희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조정2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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