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실 직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밑층에서 층간소음과 관련하여 민원을 제기하였으니 사무실로 내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렇다 할 소음을 내지도 않았던 것 같기에 관리사무실로 갔다. 아래층 민원인은 벌써 와 있었다. 대단히 마뜩찮은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층에서 걸어 다니는 발자국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창문 여닫는 소리가 무시(無時)로 나니 조심해달라는 얘기였다. 약간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유의하겠다는 답변을 하고 헤어졌다.

그 후 우리 전 가족은 그때까지 사용하지 않던 실내용 슬리퍼를 신게 되었고, 의자 밑바닥에는 소음방지용 패드를 붙였다. 현관 입구부터 거실, 주방과 방으로 이어지는 주요 동선(動線)에는 군데군데 카펫을 깔았다. 화장실에도 나무로 만든 깔판을 놓아 소음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한 번꼴로는 불편한 인터폰을 받아 관리사무실 중재로 대화를 나눴다. 이러한 소통 덕분인지 최근 1년 사이에는 더 이상의 민원은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제 또 연락이 오지 않나 항상 불안한 마음이다. 층간소음은 아래 층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위층 사는 사람에게도 극심한 스트레스이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고층아파트가 즐비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반가량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모든 사물에 명암이 있듯 아파트 또한 장단점이 있다. 함께 모여 살기에 안전하고 규모의 경제가 적용돼 관리비용이 적게 든다. 또 주차나 소소한 집 관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등 장점이 많다. 반면 층간소음 문제는 가장 큰 단점이라 할 수 있다.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 센터’에 들어온 층간소음 민원은 2012년 7천 건에서 2015년 1만5600건으로 불과 3년 새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분쟁은 심지어 살인사건으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은 흡연, 음식 냄새, 개 짖는 소리, 에어컨 실외기 소음을 둘러싼 분쟁도 비일비재하다.(조선일보, 2016.3.7)

정부도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고 있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2014년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다. 또 각급 행정단위 별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을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법적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각 아파트 단지에는 ‘층간소음 관리위원회’가, 각 자치구에는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가, 그리고 환경부에 있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그것이다.

한 국가를 통치하는 데 법은 필요하다. 하지만 층간소음의 경우 위와 같은 법 규정과 조정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법에 의존하기는 쉽지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 느끼는 정도가 상대적이고 당사자 간 조정이 안 될 경우 소음 측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게 된다.

층간소음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간 소통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법에 기대기보다 우선 입주민 간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자. 각 아파트 관리주체는 당 해 아파트의 건축 구조적 문제점과 공동주택의 특성 등을 다양한 형태로 입주민들에게 공지하여 주민 상호간 배려와 이해를 당부하자. 먼저 각 공동체가 자체적으로 해결 노력을 하고, 정 안 되면 차상위기구로 넘기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을 견지하면 해결 안 될 게 없다. 공동주택에 사는 한 층간소음은 오늘의 가해자가 내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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