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의 삶이 각박해지면서 고부간의 갈등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낮아지고 행복지수가 떨어지고 있다.

행복이란 근본적 나에게서 찾아야지 남에게서 찾으려면 찾을 수가 없게 된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행복이 찾아오고 내가 먼저 멀리하면 행복은 도망가게 된다.

오늘 행복편지는 어느 며느리의 이야기를 통해 행복한 고부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어느 청상과부가 남의 밭일, 논일을 하며 어렵게 두 아들을 키워 대학을 졸업 시킨 후 서울로 취업을 시켰는데, 그 중에서 큰 아들이 서울에서 자란 같은 직장 여직원과 사랑에 빠졌으나,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몸뚱이 하나밖에 없어 망설였으나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하였다. 그 후 여자의 부모들은 결혼 반대에 남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지만, 허리 한번 못 펴시고 우리 형제 위해 평생을 밭에서 엎어져 살아온 어머니께 배운 덕분으로 어디에 가서도 따님을 굶겨 죽이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공주처럼 고이 키우신 딸 고생문이 훤하다 걱정되시겠지만, 그래도 따님에 대한 저의 사랑, 열심히 당당하게 살 각오가 되어 있는 제 결심 이것만 높이 사 주십시오.’라며 설득하여 결국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인 대구에 내려간 며느리는 식구들과 함께 고기도 구워먹고 밭에서 딴 상추도 먹었는데 그 맛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상이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아들 며느리를 위해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보관해온 예단 이불을 작은 방에 깔아 주었는데 며느리는 어머니와 함께 자고 싶다며 어머니를 작은 방으로 모셨다.

어머니는 목욕도 며칠 못했고, 옷도 못 갈아입어 이불을 더럽혀지고 며느리가 불편해서 안 된다며 도망가려 하였으나 두 사람은 함께 소주를 먹으며 어머니가 찢어주는 김치를 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결국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잤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서 부뚜막 냄새, 흙냄새 같은 냄새를 맡으면서 그동안 서울에서 느끼지 못한 향내가 너무 좋았다.

그 후로 며느리는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잔다. 나중에는 손주와 자고 싶다며 며느리를 밀쳐 내지만 악착같이 며느리는 어머니와 함께 자며 이야기를 나눈다.

옆집사람들은 며느리들이 차갑고 불편해해서 와도 눈치 보기 바쁘다고 하는데 내가 먼저 다가가니까 어머니는 ‘나는 네가 이래 딸처럼 대해주니 너무 좋다’고 한다.

몇 년 후 혼자 계시던 어머니가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여 3개월 만에 퇴원을 하였는데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뭐라거나 말거나 그 사이 대구에 내려가서 간단히 어머니 옷가지며 짐을 챙겨 서울 집에 어머니 방을 꾸렸다.

시어머니는 당연히 곱게 올라올 리가 없었다. 며느리는 ‘어머니! 저 둘째가져서 너무 힘들어요!!, 우리 친정엄마 아이도 잘 안 봐주시고, 제가 회사에 임신에 육아에 힘들어 죽겠어요! 와서 저도 도와주세요! 임신하니까 어머니 음식이 그렇게 당겨 죽겠단 말이에요! 어머니 김치 담아주세요.’ 하며 시어머니를 서울로 모셨다.

많은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모시고 살아봐야 힘든 줄을 알지. 착한 며느리 노릇 아무나 하는 줄 아나?’

며느리도 생각했다 '그래 맞다. 내가 안 해봐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일수도 있다. 어머니와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고 어쩌면 어머니가 미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린다. 이 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증인이니 앞으로 혹여나 내가 어머니가 미워지고 싫어져도 어쩔 수 없게 만들고 싶다. 그러면서 그냥 이게 내 팔자려니 열심히 지지고 볶고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평생 같이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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